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달의 예술

비슷함과 다름 - AI 음악의 창의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작곡과 교수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작곡과 교수

최근 한 방송국의 신년 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 이교구 교수팀이 개발한 인공지능(AI)가 고(故)김광석의 목소리를 학습하여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불렀는데, 죽은 가수를 소환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김광석의 목소리와 비슷해서 놀라움을 주었다. 광주과학기술원 안창욱 교수가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EVOM)은 트로트 작곡가 김한식과 작곡 대결을 펼쳤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평가단은 AI의 곡보다 인간 작곡가의 곡을 선호하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익숙함’이었다. 반면 AI가 작곡한 노래는 ‘새롭다’고 평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대중음악 영역에서는 이처럼 ‘비슷함’, 즉 모방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 반면 예술음악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미국의 작곡가 코프(D. Cope)가 선보인 AI작곡가 에미(Emmy·앨범 사진)는 음악사에서 대가로 평가되는 약 35명 작품의 패턴을 추출하고 이를 재조합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약 1000여곡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예컨대 모차르트와 유사하지만 모차르트의 곡이 아닌, 듣기 좋은 곡들이었다. 놀라운 점은 에미가 인간보다 8만배 빠르게 작곡을 할 수 있기에 에미의 모든 곡은 인간 작곡가로서 200년을 밤낮으로 계속 작곡해야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 작곡가 에미의 앨범 표지

인공지능 작곡가 에미의 앨범 표지

그런데 에미에 대한 음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가장 결정적인 비난은 ‘그것이 질 낮은 모차르트였다’는 것, 즉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코프는 ‘창의성’이라는 것은 직관이나 고유성과는 다른 것으로, 이미 존재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았던 재료들을 ‘재합성’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처럼 AI가 음악에 도입되면서 음악의 창작에서 관건이 되는 창의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비슷함’과 ‘다름’ 중 어떤 것이 예술성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음악사가 ‘다름’을 강조한 반면, AI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것을 모방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로 접어들면서 예술음악에서 ‘다름’의 가치가 저하된 반면, AI 음악은 오히려 ‘다름’을 추구하고 있다. 코프가 패턴 모방에서 벗어난 ‘에밀리 하웰’이라는 새로운 AI 작곡가를 내놓은 것도 그러한 시도로 보인다.

‘음악이야말로 에너지 그 자체거든.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체로서 그렇단 말이야. 신의 모방이라고나 할까’.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주인공 레버퀴인이 말하듯, 사실 예술 음악에서도 모방은 중요한 척도였다. 그래서 모방과 독창성 사이를 오가는 AI의 시도는 예술가의 자연스런 모습으로 보인다. 비슷함과 다름 사이의 고민은 인간과 AI 작곡가 모두에게 지워진 영원한 숙명이 아닐까?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작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