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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벌집 짓고 아무데나 나무밭…누더기된 청주 어느 마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가 조성될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벌집으로 불리는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다. 최종권 기자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가 조성될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벌집으로 불리는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다. 최종권 기자

사람 안 사는 벌집 다닥다닥…"투기 의심" 

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 입구.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흰색 조립식 주택 20여채가 눈에 띄었다. 외벽이 샌드위치 패널로 된 이른바 ‘벌집’이었다. 60㎡ 안팎의 조립식 주택은 마을 입구부터 산 능선 아래까지 쫙 퍼져 있었다. 한쪽에선 주택을 짓거나 조경수를 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근 부동산업소 관계자는 “패널로 된 외벽에 거실 겸 주방과 방이 딸린 이런 집들은 실제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보상금을 받기 위해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르포] 벌집촌 된 청주 넥스트폴리스 예정 부지

이곳에 들어선 벌집들은 한 블록당 20여채씩 모두 50~60채에 달했다. 좁은 길을 따라 나무를 실은 대형 트럭이 쉴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주민 이모(84)씨는 “지난해 7월께부터 트럭이 수십여대 드나들더니 흙을 쌓고 주택을 올렸다”며 “집만 지어놓고 왕래가 없어서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집 앞은 원래 고추나 파를 기르던 가파른 밭이었다고 한다. 조립식 주택을 지으면서 성토를 높게 하는 바람에 지금은 이씨의 집이 오히려 낮아진 상태다.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가 조성될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벌집으로 불리는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다. 최종권 기자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가 조성될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벌집으로 불리는 조립식 주택이 들어섰다. 최종권 기자

마을 자투리 땅까지 나무 밭 빼곡 

충북개발공사는 정상마을을 포함한 이 일대 189만1574㎡(57만평) 부지에 2028년까지 ‘넥스트폴리스 산업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총 사업비는 8540억원에 달한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6월 산업단지 조성계획이 충북도의회 승인을 받자마자 ‘벌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은 집에는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았다. 또 다른 주민 이모(71)씨는 “개발 계획을 입수한 외지인들이 벌집을 짓는 바람에 동네가 누더기가 됐다”며 “보상금을 노린 계획적 투기행위 같다”고 말했다. 넥스트폴리스가 들어설 청주시 청원구 정상·정하·정북·사천동 일원은 한해 건축허가가 10여건에 불과할 정도로 외진 마을이었다. 하지만 산단계획이 알려진 지난해 초부터 청주시가 개발행위 허가를 제한한 그해 8월 22일까지 200건으로 20배 정도 폭증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논에 빼곡히 심은 나무.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논에 빼곡히 심은 나무. 최종권 기자

마을에는 빼곡히 심은 나무밭도 여럿 보였다. 수령은 오래됐으나 가지를 자른 대추나무, 박달나무, 소나무가 있었다. 마을 한복 판에 있는 논에도 흙을 덮은 뒤 4~5m 길이 나무가 촘촘히 심겨 있었다. 이들 나무는 간격이 1m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한 주민은 ”지난해 8월께 산과 밭을 임대한 뒤 마구잡이로 나무를 심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한 임대인은 개발예정지 경계에 논을 빌려 나무를 잔뜩 심었다. 누가 봐도 나무 보상을 노린 행위인데 시에서 투기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폴리스 등 산단 3곳 투기 조사 

충북도는 넥스트폴리스를 포함한 오송 제3생명과학 국가산업단지(1020만㎡), 음성 맹동·인곡 산업단지(171만㎡) 개발과 관련한 투기 행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대상은 넥스트폴리스와 음성 인곡산단 개발을 맡아 진행하는 충북개발공사 임직원(76명)과 오송3산단 조성 사업 관련 부서인 충북도청 바이오산업국(47명)과 경제통상국(100명) 소속 공무원이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논에 빼곡히 심은 나무.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상마을에 논에 빼곡히 심은 나무. 최종권 기자

충북도는 이들 산단 입지가 공식 발표된 5년 전부터 현재까지 근무한 이력이 있는 공무원과 공사 직원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전체 조사대상이 1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충북도 감사관실 관계자는 “조사 결과 부당 토지거래가 의심되면 경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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