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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계 트럼프?…'거친 입' 니라 탠던, 백악관 예산국장 낙마 위기

중앙일보

입력

니라 탠던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후보자가 과거 막말 논란으로 낙마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니라 탠던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후보자가 과거 막말 논란으로 낙마 위기에 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 중 상원 인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첫 낙마 사례가 나올지를 놓고 백악관이 긴장하고 있다. 논란의 인물은 유색인종 출신으로 첫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에 지명된 니라 탠던(51)이다.

상황이 급박해진 건 지난 24일(현지시간) 상원 상임위에서 탠던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국토안보·정부업무위는 “의원들이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탠던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가 이어지며 결국 상원에서 지명 철회 요구가 나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존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니라 탠더 후보자의 청문회가 연기된 지난 24일(현지시간) MSNBC에 출연해 ″그가 훌륭한 예산관리국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MSNBC 캡쳐]

존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니라 탠더 후보자의 청문회가 연기된 지난 24일(현지시간) MSNBC에 출연해 ″그가 훌륭한 예산관리국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MSNBC 캡쳐]

탠던의 발목을 잡은 건 과거 그가 했던 ‘막말’이다. 진보 성향의 비영리단체 미국진보센터(CAP) 의장을 지낸 탠던은 당시 공화당 정치인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특히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을 두고 보수 세력과 각을 세웠다. CNN에 따르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대해 “뱀파이어가 크루즈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거나,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볼드모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볼드모트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악당이다.

지명 초부터 그를 둘러싼 논쟁은 뜨거웠지만, 백악관은 여유로웠다. 상임위를 거쳐 상원 인준을 받기 위해선 전체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은 50석씩 양분돼있는데, 동률일 경우 당연직인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고, 동률이 될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찬성하는 시나리오를 그린 것이다.

민주당 내 소신파로 평가받는 조 맨친 의원. AP=연합뉴스

민주당 내 소신파로 평가받는 조 맨친 의원. AP=연합뉴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전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민주당 조 맨친 상원의원은 “탠던의 당파적인 발언이 의원들과의 업무에 있어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맨친 의원은 민주당 내 소신파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2025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7.25달러(약 8150원)에서 15달러(약 1만6800원)로 인상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백악관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단순히는 공화당에서 찬성표를 던질 1명을 섭외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화당에서도 초당파로 꼽히는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밋 롬니(유타), 수전 콜린스(메인) 의원 등이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롬니와 콜린스 의원은 이내 반대 의사를 밝혔고, 기대를 걸만한 건 머코스키 의원뿐이다.

리사 머코스키 알래스카 상원의원은 "탠던 후보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알아봐야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리사 머코스키 알래스카 상원의원은 "탠던 후보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알아봐야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탠던이 과거 머코스키에 대해 쓴 트위터가 변수가 됐다.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머코스키 의원은 지난 2017년 세법안에 대한 찬사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탠던이 “당신도, 우리도, 모두 안다. 이것이 쓰레기라는 것을”이란 글로 받아쳤단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탠던의 역량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탠던도 대응에 나섰다. WSJ는 백악관 보좌관 등을 인용해 “탠던이 상원의원들과 15차례 통화를 하는 등 양당의 44명의 상원의원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부 공화당원들은 그와 만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앞서 그는 지명 직후 트위터에서 1000여 건의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다.

인도계 이민자 2세인 니라 탠던이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이 되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유색인종 예산국장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로이터=연합뉴스

인도계 이민자 2세인 니라 탠던이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이 되면 미국 역사상 첫 여성 유색인종 예산국장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로이터=연합뉴스

매사추세츠에서 인도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탠던은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하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1992년 빌 클린턴,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여러 민주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일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상원의원이었을 때 참모로 활약했다. 하지만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후보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대본부장에게 “클린턴의 정치 감각은 별로(suboptimal)”라고 뒷말을 한 e메일이 위키리크스에 의해 드러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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