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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인권보호기관’ 강조하더니, 3개 검찰청 인권감독관 공석

중앙일보

입력

법무부는 지난 22일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검사) 인사를 발표하면서 “인권 보호 전담 검사를 주요보직에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나병훈(사법연수원 28기·전 서울남부·광주지검 인권감독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박재억(29기·전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 청주지검 차장검사, 권기대(30기· 전 안양지청 인권감독관) 안양지청 차장검사 등이다.

'한명숙 위증교사' 무혐의 뒤 대검 인권부 해체

검사의 인권보호관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의 인사지만, 거꾸로 이번 인사로 전국 검찰청 중 총 3곳의 인권감독관은 공석으로 남겨지게 됐다. 박재억 차장검사와 권기대 차장검사가 각각 떠난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과 안양지청 인권감독관, 최근 신은선(30기) 부장검사가 사표를 내고 떠난 청주지검 인권감독관 등이다.

법무부가 지난 22일 단행한 검찰 고검검사급 인사 결과 서울서부지검·청주지검·안양지청의 인권감독관 자리가 공석으로 남겨졌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출입구 모습. 뉴스1

법무부가 지난 22일 단행한 검찰 고검검사급 인사 결과 서울서부지검·청주지검·안양지청의 인권감독관 자리가 공석으로 남겨졌다. 사진은 지난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출입구 모습. 뉴스1

공석을 바로 채운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 대검찰청 감찰2과장과 대조적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선 지검·지청은 인권감독관이 공보관 역할을 겸임하는 터라 현재 공보 역할을 누구에게 맡길지를 두고도 혼선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인권감독관 제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 신설됐다. “검찰의 인권 옹호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확립하고 내부 비리 근절을 위한 감찰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이유였다. 2017년 8월 서울중앙·대전·대구·부산·광주지검 등 5개 지검에 신설한 뒤 12개 지검(2018년 7월)→14개 지검(2019년 8월)→18개 지검(2020년 1월)→5개 수도권(고양·부천·성남·안산·안양) 지청에도 추가 배치했다. 이와 관련 법무부는 “검찰의 인권보호 기능을 강화했다”며 “공보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사전 예방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했다.

여권에선 수사·기소 분리 등 검찰 관련 제도 개편의 명분으로도 “검사는 경찰의 인권 침해 통제기관”이라는 명분을 대 왔다. 특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신임 검사 26명의 임관식에서 “검사는 인권감독관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검찰은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고, 검사는 인권 옹호의 최고 보루”라고 강조했다.

2019년 6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부터)이 회의 시작 전 차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들 재직 기간 탄생한 대검찰청 인권부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폐지됐고, 각 지검과 지청에 신설된 인권감독관은 한직 코스로 분류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6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부터)이 회의 시작 전 차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이들 재직 기간 탄생한 대검찰청 인권부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폐지됐고, 각 지검과 지청에 신설된 인권감독관은 한직 코스로 분류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기 전 장관 시절에는 대검에 인권부가 신설됐고, 조국 전 장관 시절에는 ‘인권 보호 수사규칙’이 탄생하는 등 시종일관 인권 보호에 방점을 찍어 왔다.

그러나 추 전 장관 시절부터 인권감독관이 좌천성 인사 코스로 변질하며 검찰 내부에서도 점차 ‘한직(閑職)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인권감독관으로 일했던 검사들이 잇달아 고검 검사 등 좌천성 발령을 받으면서다.

실제 2020년 8월 중간 간부 인사에선 전국 18개 지검 인권감독관 중 17명이 중요경제범죄조사단(9명)·고검(6명)·법무연수원(1명), 타 지검 인권감독관(1명)으로 전보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左), 윤석열 검찰총장(右). 뉴스1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左), 윤석열 검찰총장(右).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6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과 관련한 검사의 위증교사 의혹을 담은 진정 사건을 대검 인권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한 뒤 같은 해 7월 무혐의로 조사 결과를 보고하자 대검 인권부가 아예 공중분해 되기도 했다. “특별수사 등 검찰의 주요 수사에 대해 ‘레드팀’ 입장에서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확보하고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며 출범한 지 2년 만이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부에선 정권과 무관하게 스스로 인권 보호를 위한 내부 문화 개선 작업이 점진적으로 이뤄져 왔다. 인권을 앞세웠던 현 정부에선 역설적으로 한 3년 정도 퇴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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