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중국 e위안 14억명 ‘투명지갑’ 노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2.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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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지난 16일 베이징 왕푸징 거리의 왕푸징 백화점 앞에 설치된 e위안 안내 홍보물. 신경진 기자

지난 16일 베이징 왕푸징 거리의 왕푸징 백화점 앞에 설치된 e위안 안내 홍보물. 신경진 기자

“디지털 왕푸징, 빙설 쇼핑절.”
춘절 연휴이던 지난 16일 베이징 왕푸징(王府井) 쇼핑가에 디지털 인민폐(이하 e위안)를 홍보하는 광고판이 가득했다. 1년도 채 남지 않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도 보였다. 춘절을 앞두고 신청자 252만명 중 추첨으로 5만 명에게 200위안(3만4000원)씩 총 1000만 위안(17억원)을 나눠 준 e위안 판촉 행사가 한창이었다. 왕푸징의 최고급 백화점인 센트럴(王府中環)의 한 매장 직원은 “춘절을 앞두고 e위안 단말기 사용법을 교육받았다”면서 “실제 e위안으로 결재한 손님이 아직은 없다”고 말했다. 리펑(李鋒) 둥청(東城)구 금융판공실 부주임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을 1년 앞두고 IT 올림픽을 위해 편리한 지급·결제 서비스 환경, 국제 소비 특구 조성을 위한 중요한 조치”라고 e위안 시범 서비스를 소개했다.

지난 16일 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 쇼핑몰의 한 매장 계산대에 디지털 위안화 결제 단말기가 놓여있다. QR코드와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이 설치된 스마트폰을 갖다 대는 결제 방식인 ‘펑이펑(碰一碰)’ 인식 기능이 적혀있다. 신경진 기자

지난 16일 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 쇼핑몰의 한 매장 계산대에 디지털 위안화 결제 단말기가 놓여있다. QR코드와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이 설치된 스마트폰을 갖다 대는 결제 방식인 ‘펑이펑(碰一碰)’ 인식 기능이 적혀있다. 신경진 기자

중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춰 도입하려는 e위안은 디지털 화폐와 전자 지불(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DCEP)을 합친 개념이다. 기록 변경이 어렵고, 추적은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기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와 비슷한 전자 지갑에 담은 셈이다.
선전(深圳)·쑤저우(蘇州)·슝안(雄安)에 이어 e위안 시범 도시 대열에 베이징이 합류하면서 중국 내 블록체인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본격적인 관심은 지난 2018년 5월 28일 중국과학원·공정원 원사(院士) 대회에서 시작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블록체인을 인공지능·양자정보·이동통신·사물인터넷과 함께 차세대 정보기술로 콕 집어 언급하면서다. 이듬해인 2019년 10월 24일에는 중앙 정치국 집단학습 주제로 블록체인을 선정했다. 시 주석은 총평에서 “블록체인을 핵심 기술의 자주 혁신에서 중요한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사흘 뒤 중국의 국회 격인 전인대(全人大)는 블록체인의 법률적 기반인 ‘암호법(密碼法)’을 전격 통과시켰다.
암호법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블록체인 도입 의지를 잘 보여준다. 우쭝한(吳宗翰) 대만 국방안전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논문에서 “암호법은 ‘총칙’에서 ‘암호는 당이 관리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며 “중국식 블록체인 기술은 ‘법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 거버넌스’와 ‘과학기술을 활용한 사회 거버넌스’를 실현하는 구체적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암호법은 국가암호관리국을 주관기구로 지정해 ‘암호키 위탁관리(key escrow)’를 맡겼다. 국가 안보 등 특수 상황에서 비밀번호(암호)를 풀 수 있는 만능 암호키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우 연구원은 또 중국이 자국의 블록체인 하위 기술규격을 국제 표준으로 속속 제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금융·유통 서비스 국제 시장을 선점하려는 시도다.

베이징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왕푸징에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을 알리는 대형 카운트다운 시계가 서있다. 신경진 기자

베이징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인 왕푸징에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일을 알리는 대형 카운트다운 시계가 서있다. 신경진 기자

e위안은 기술적으로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먼저 일반 상업은행이나 금융기관에 태환(兌換)한 뒤 이들이 다시 일반 중국인에게 발행하는 ‘이중 구조’를 채택했다. 여기에 기존 알리페이·위챗페이와 달리 인터넷이나 전화 신호가 없이도 현금처럼 주고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지급(雙離線支付·dual offline technology)’ 기능을 도입했다. 해킹을 방지한 근거리 통신 기능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에서는 전화기끼리 마주쳐 거래하는 데 착안해 부딪치다는 뜻의 ‘펑이펑(碰一碰)’ 기술로 불린다.
단 e위안의 오프라인 거래는 익명성에 한계가 있다. e위안이 ‘탈중심화’라는 블록체인 본질을 벗어났다고 비난받는 이유다. e위안의 거래 정보를 시스템 배후의 중앙은행이 전면적으로 관리한다고 해서 ‘통제 가능한 익명성(可控匿名·controllable anonymity)’으로 불린다.
중국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연구원 원장은 지난 2019년 싱가포르 핀테크 포럼에서 “e위안에 지폐나 동전과 같은 거래의 익명성을 제공하겠다”면서도 “동시에 ‘통제 가능한 익명성’과 자금세탁방지, 테러 자금조달(CTF)과 세금 문제, 온라인 도박과 전자 범죄행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발표한 ‘중국의 디지털 화폐’ 보고서 표지.

지난 1월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발표한 ‘중국의 디지털 화폐’ 보고서 표지.

결국 e위안의 성패는 일반 중국인이 ‘반(半) 익명성’을 받아들일지에 달렸다. 베이징의 30대 회사원인 류(劉) 씨는 “e위안이 완전히 현금을 대체하게 되면 개인의 해외 송금이나 거액 거래가 당국에 투명하게 노출돼 사실상 재산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싱크탱크의 경고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인민폐는 중국 공산당이 경제를 감시하고 정부가 시민의 삶에 간섭하는 요긴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지난달 ‘중국의 디지털 화폐’ 보고서에서 경고했다.

중국 블록체인·e위안 주요 연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블록체인·e위안 주요 연표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봉교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탈중심화’를 제거한 중국 특색의 블록체인인 e위안을 중국이 도입하는 목적은 결국 ‘통제 가능한 익명성’에 있다”며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내부 청산 정보를 당이 시시콜콜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총국장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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