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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명예회장, 23년만에 경영서 완전 손 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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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지난 2006년 기아 조지아 공장 조인식에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과 소니퍼듀 주지사가 악수하는 모습을 정 명예회장(가운데)이 바라보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다. 지난 2006년 기아 조지아 공장 조인식에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과 소니퍼듀 주지사가 악수하는 모습을 정 명예회장(가운데)이 바라보고 있다.

정몽구(83)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그룹의 모든 경영에서 손을 뗀다. 1998년 현대차 회장에 오른 지 23년 만이다.

내달 현대모비스 등기이사 사임 #77년 초대 사장 맡아 키웠던 회사 #갤로퍼 신화로 경영능력 인정받아 #현대차그룹 모든 직책서 물러나

21일 재계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오는 3월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사내 등기이사직을 사임한다. 정 명예회장은 2019년 3월 현대모비스 임시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재선임돼 2022년 3월 21일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대신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의 사내 등기이사 자리에 고영석 연구개발(R&D) 기획운영실장(상무)을 추천했다. 상무급 임원을 사내이사로 추천한 건 현대모비스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직급보다 전문성을 고려해 이사회를 구성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8일 공시를 통해 “고영석 상무와 김대수 고려대 교수, 조성환 사장, 배형근 부사장 등 4인에 대한 이사선임 안건을 정기 주총에 상정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 주총이 예정대로 끝날 경우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등기 이사직을 모두 내려놓게 된다. 정 명예회장은 2014년에는 현대제철, 2018년 현대건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에게 넘겨줬다. 같은 해 10월에는 정의선 부회장이 회장직에 취임하면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직도 함께 내려놨다. 재계에선 향후 정 명예회장이 아들인 정의선 회장 시대의 연착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정 명예회장 주도로 1991년 출시된 현대차의 SUV 모델 갤로퍼. [연합뉴스]

정 명예회장 주도로 1991년 출시된 현대차의 SUV 모델 갤로퍼. [연합뉴스]

현대정공의 후신인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에게 각별한 회사다. 정 명예회장은 1977년 현대정공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정 명예회장은 1991년 갤로퍼를 출시해 성공시키며 부친인 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고, 결국 1999년 작은 아버지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에게서 현대차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현대정공은 3년 뒤인 2002년 현대모비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현대모비스는 정 명예회장이 20년 넘게 현대차를 이끌며 강조했던 ‘품질 경영’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모비스가 부품 수십 개를 묶어서 모듈 형태로 생산한 다음, 현대차가 이를 조립하는 ‘모듈화 전략’은 2010년대 들어 현대차·기아가 판매량 기준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 ‘빅5’로 올라서는 원동력이 됐다. 숙련공 근로자가 부족한 한국 현실에서도 품질 높은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됐다. 2만~3만여개에 달하는 각종 부품은 샤시, 운전석, 도어, 시트 등 10여개 모듈로 간단해졌고 그만큼 차량의 품질도 높아졌다.

또 현대차가 미국에서 실시한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은 정 명예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 도요타가 5년, 6만 마일을 보장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10년, 10만 마일 보증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또 그룹 R&D 거점인 남양연구소를 설립해 핵심 기술을 자체 확보했고, 미국에선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헌액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정의선 회장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보다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를 확립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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