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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학폭' 드라마 뒤 똑같은 학폭…이번엔 음식 구겨넣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방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 2'의 한 장면. 극중 유제니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억지로 많은 음식을 먹고 있다. SBS펜트하우스 캡처

지난 20일 방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 2'의 한 장면. 극중 유제니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억지로 많은 음식을 먹고 있다. SBS펜트하우스 캡처

“내가 먹는 것처럼(느껴지게) 생생하게 먹으라고!”

지난 20일 방영된 SBS 인기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 2' 2회의 한 장면. 같은 반 친구(극중 하은별과 주석경)가 유제니에게 많은 양의 음식을 억지로 먹게 했다. 음식을 다 먹어야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상황. 유제니는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쉴 새 없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방송 뒤 이 방송사 공식 유튜브 계정에는 “난 오늘 제일 신경 쓰이는 게 제니임. 꾸역꾸역 먹는 거 진짜 불쌍해”라는 댓글이 달렸다.  3000명 이상의 공감을 받았다. 이 드라마를 시즌1부터 본 박모(25)씨는 “요즘 학교폭력이 논란인데,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나와 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들이 보고 따라 할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 온라인 맘카페에는 "요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을 보다가 학교폭력 내용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에이 설마 저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사가 너무 생생해서 진짜 제 아들이, 조카가 저렇게 맞고 다니면서 보복이 두려워 말을 못한다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는 글이 올라왔다.

"폭력 콘텐츠 반복되면 모방 영향" 

지난해 12월 15일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스파링을 가장한 학교폭력 엄중처벌'로 알려진 이 청원에 지난 10일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소년범에 대한 형사 처벌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청원 캡처

지난해 12월 15일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 '스파링을 가장한 학교폭력 엄중처벌'로 알려진 이 청원에 지난 10일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소년범에 대한 형사 처벌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청원 캡처

드라마가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할 수도 있지만, 생생한 장면과 대사가 오히려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24일에 방영된 '펜트하우스 시즌 1' 9회에서는 고교에서 스파링을 가장해 반 친구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4일 뒤 이와 비슷한 학교폭력이 실제로 발생해 지난해 12월 15일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11월 28일 인천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이 가해 학생들에게 스파링을 가장한 폭력을 당해 현재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37만명이 넘게 이 청원에 동의해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받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느 한 작품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폭력 장면을 담은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나오게 돼서 둔감해지는 분위기가 생기면 모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과거에 이런 학교폭력 상황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라며 "드라마 때문에 해당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드라마는 중학생들이 동갑인 과외교사를 수영장에 빠뜨리고, 폐차에 가두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의 장면 때문에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1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방통위는 법정 제재인 ‘주의’를 최종 의결하고 시청 등급 조정 요구했다. SBS는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고 시청 등급을 일부 회차에서 19세 이상 시청가로 조정했다.

"학교 폭력은 문화 아니라 범죄"

전문가들은 드라마 속 표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대신 해당 내용에 대한 위험성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덕현 평론가는 "글로벌 시대에 해외 작품들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표현 자체를 못하게 막으면 콘텐츠 업계는 어려워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그 영역 자체는 열어주되 통제 수단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작품이 나왔을 때 어떠한 위험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걸 자세히 고지해야 한다. 지금은 이 부분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택광 교수는 "학교폭력에 대한 명확한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이라는 문제에 접근할 때 단순한 소재 중 하나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사회 고발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학교폭력이 그냥 아이들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사법 판례 같은 게 많이 나오면서 이제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식이 달라지면서 따로 고소할 방법을 못 찾은 이들이 1인 미디어 등을 통해 연예인에게 당했던 학폭 등을 최근 발언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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