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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유일의 편의점 前점장 "코카콜라·아이스커피 최고 인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도발로 개성공단의 가동을 전면 중단(2016년 2월 10일)한 지 올해로 만 5년째. 한때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북측 근로자 5만4000명이 근무하던 개성공단 내 편의점 세 곳의 문도 굳게 닫혀있다. 북한 내 유일한 편의점 CU를 운영하던 한지훈(39ㆍ사진) BGF리테일 책임을 지난 17일 만났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100여개 CU 지원팀장인, 한 책임의 5년 전 얘기를 따라간다.

개성공단서 CU편의점 3개 운영 #당시 운영자 한지훈 책임 인터뷰

개성동단 내 편의점 점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하지훈 BGF리테일 책임의 모습. 한 책임은 북한 유일의 편의점 관리자였다. 사진 한지훈 책임 본인 제공

개성동단 내 편의점 점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하지훈 BGF리테일 책임의 모습. 한 책임은 북한 유일의 편의점 관리자였다. 사진 한지훈 책임 본인 제공

난 편의점 점장이었다. 편의점은 개성공단 내에 있었다. 북한 유일의 편의점이다. 신입사원이던 2008년 10월부터 약 8년 동안 이 편의점을 맡았다. 2004년 12월 개성공단점을 시작으로, 2013년 4월 문을 연 개성공단지원센터점까지 총 3개 점포를 담당했다.

‘북한 편의점 점장’이란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일단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남한으로 나오는 것 외엔 개성공단 내 숙소에 머물러야 했다. 남북 합의에 따라 스마트폰처럼 사진과 영상을 기록할 수 있는 기기는 사용할 수 없는 곳이다. 남한의 가족이나 친지와의 연락은 모두 사전에 허가된 회사 유선전화로만 해야 했다. 국제전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은행거래도 인터넷 뱅킹이 아니라, 폰 뱅킹으로만 가능하다. 업무 전화 등을 합쳐 한 달 전화비만 80만원가량이 들었다. 신문이나 잡지 반입도 어려웠다. 그래서 주말에 남한에 나올 때면 ‘휴가 나오는 군인’ 같은 기분이었다. 북한에서 일하는 대신 회사에선 ‘기타 수당’을 더 챙겨줬다.

"함께 일하던 北 직원 갑자기 떠나" 

점포에서 나를 비롯, 남자직원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북한 근로자였다. 점포 3곳을 합쳐 9명의 북한 사람이 우리의 동료였다. 근무는 오전 9시쯤 시작해, 오후 11시면 끝이 났다. 북한 직원들도 오전 9시면 출근했다. 북한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웃을 일도 많았다. 한 번은 “남한의 나이트클럽에선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는 부킹이란 걸 한다”고 했더니, 20대인 북한 여직원들은 “거짓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재미난 기억이지만 한편으론 ‘다름’을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북한 직원들은 한 달 70달러 정도를 급여로 가져갔다. 개성공단 내에선 편의점이 인기 직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6개월~1년 정도 근무한 뒤 "○○일부턴 다른 사람이 나온다"고 일방 통보하고 모습을 감췄다. '왜 그만둬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은 묻지 않는 게 그곳에선 불문율이었다.

CU 개성공단 3호점 매장 모습. 편의점은 현지에서 '남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으로 통했다. 사진 BGF리테일

CU 개성공단 3호점 매장 모습. 편의점은 현지에서 '남한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간으로 통했다. 사진 BGF리테일

점포에선 술과 담배 등을 합쳐 700여 가지 제품을 팔았다. 한국 일반 점포의 3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다 보니 일일이 상품 코드를 따로 입력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많았다. 원화도 안 받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었다. 물건은 오로지 달러로만 팔았다. 편의점 고객은 남한 관리자들이 많이 찾았지만 북한 근로자도 적지 않았다. 팔아야 할 상품은 매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의 물류센터에서 배송됐다.

"아이스 커피·콜라 北에서 최고 인기" 

북한 근로자에게 인기 상품은 단연 코카콜라와 초코파이, 신라면이 꼽혔다. 또 아이스 커피류가 하루 100잔 이상 팔렸다. 아이스 커피는 ‘얼음’ 자체가 귀했고, 흔하디흔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그곳에선 '레어템(드문 아이템)'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나름 ‘자본주의의 맛’이랄까. 편의점은 또 남한 사람들에겐 힐링의 공간이었다. 북측 근무자들에게는 반대로 남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CU개성공단 2호점의 모습. 사진 BGF리테일

CU개성공단 2호점의 모습. 사진 BGF리테일

북한에서의 근무 기간은 편의점 장사 역시도 정치나 외교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단 걸 뼈저리게 배운 시간이었다. 실제 개성공단 편의점들은 남북 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운영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하지만 5년이나 문을 닫은 건 처음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멀어져 간다는 점이다. 함께 웃고 울던 시간. 스마트폰이 없어 사진도 남기지 못했으니, 북한 친구들의 얼굴은 점점 흐려져 간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북한에서 편의점 상품 바코드를 찍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회사도 개성공단 내 점포 3곳을 폐점이 아닌 휴업 점포로 관리하고 있다. 문을 닫고 있는 세 곳 점포의 열쇠도 아직 내가 보관 중이다. 후임자에게 점포 인수·인계를 할 때까지는 여전히 내가 북한 유일의 편의점 담당자다. 철마가 달리고 싶듯이, 나는 편의점을 다시 열고 싶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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