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자기장, 인체유해 증거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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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의 인체 유무해 논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이상 섣불리 단정할 일은 못되며, 따라서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전자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구분되며 전자는 전압에, 후자는 전류에 비례해 발생한다.

무해론부터 살펴보면, 한국화학연구원 독성연구부 정문구 박사팀의 연구보고서(2002년 5월)에 따르면 임신.수유기 쥐를 대상으로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유해성을 측정한 결과, 전자파가 임신.출산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2세 동물의 성장, 행동 및 생식에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박사팀은 임신.수유기(40일 가량) 생쥐 96마리를 24마리씩 나눠 한 그룹은 정상으로 놔두고, 나머지 3개 그룹에 50mG(밀리가우스:자기장 세기 단위), 833mG, 5천mG의 전자파를 각각 노출시킨 뒤 임신과 분만, 어미의 수유기 상태, 2세의 출생 후 성장, 행동, 생식 과정 등을 8개월간 종합 관찰했다.

여기서 50mG는 국내 송전선로의 최대 자기장이며, 833mG는 WHO 권고치, 5천mG는 실험에 사용된 노출장치가 낼 수 있는 자기장 최고치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결과, 전자파의 세기를 달리한 쥐들과 정상 쥐 모두 병적 증상이나 몸무게의 변화, 음식소비, 임신, 분만, 수유 등에 아무런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들 에게서 태어난 2세들도 성장, 행동 및 생식에 문제가 없었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프랑스의 B. 베이레 박사는 2001년 11월 정보통신부와 세계보건기구(WHO)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WHO 전자파 인체영향 및 보호기준 국제회의'에서 50-60 ㎐의 전력선 주파수 및 1㎓ 부근의 이동통신 주파수에서 수행된 대부분의 연구에서 전자파의 암 발생 영향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아직 없었다고 밝혔다.

또 독일의 카이펫츠 박사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2001년 6월 전문가그룹 회의에서 소아백혈병에 대한 역학연구에 근거, 극저주파수 자기장(60㎐)을 인간에게 발암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물자로 분류했으나 충분한 증거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속철(KTX)내 자기장이 승객이나 승무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한 한양대 김윤신 교수도 이 WHO 국제회의에서 "휴대폰이 중추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3-34세의 자원자 16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사용이 뇌 파 스텍트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휴대폰을 5년이상 장기간 사용한 그룹과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그룹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보고했었다.

영국암연구기금의 존 토이 박사는 '브리티시 저널 오브 캔서'(2000년11월) 에서 영국에 사는 3천380명의 소아암 환자와 3천390명의 건강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력선에 노출된 정도를 비교, 조사한 결과 공중의 고전압 전력선과 지하에 매설된 케이 블을 비롯 주거지 근처의 모든 전기공급장비와 소아암 발병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정문구 박사팀의 연구결과에 대해 학계 일각에서는 반론을 제기, 전자파 수치가 4mG 이상이면 중추신경 종양과 백혈병 등의 발병률을 6배씩 높인다고 경고했으며 시민단체들은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이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립환경연구원은 2001년 10월 "국제기구의 기준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에 일단 안전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일부 학교의 경우 자기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카이저재단 연구소의 더-쿤 리 박사는 '역학(疫學)'(2002년 1월호)에 게재한 연구보고서에서 정밀도가 높은 전자자기장(EMF)측정기기를 사용해 연구를 실시한 결과, 여성이 평상수준의 EMF에 노출될 경우 유산에 이를 위험은 없는 것으로 추정됐으나 여성들이 낮시간에 상당수준의 EMF에 노출됐을 때는 유산과 관련이 있음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전자파감시기구인 국립전자파보호위원회(NRPB)는 이 보고서를 신중히 검토는 하겠으나 현재까지 크게 주의를 요할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 했다.

연세대 의대 김덕원 교수는 '전자파 인체영향과 노출감소 방안'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전자파 유해론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그 이유로는 전자파가 어떻게 각종 질병과 암을 유발하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기전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전자파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흡연의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았던 시대에 흡연을 방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과학적으로 그 유해성이 밝혀질 경우에 대비해 정부 차원에서 연구를 진흥하고 각 개인은 가능한 노출감소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자력의학원 이윤실 박사는 "고속철(KTX)에서 측정된 수준의 자기장이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데이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KTX에서 측정된 자기장이 일상생활에서보다 높게 나타날 수는 있으나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치보다 낮기 때문에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치는 가장 안전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이하로 측정됐다면 이는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의 담당부처인 정보통신부도 KTX 자기장의 건강위협 우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정통부 관계자는 "현재 국내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치는 833mG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을 도입한 것"이라면서 "이는 동물 실험 등에서 전자파의 영향이 나타나는 특정 수치보다 50분의 1 수준을 반영한 것이어서 최대한의 안전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운행되던 고속철이 국내에서 문제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더욱 정밀한 측정을 위해 고속철도측에 정밀측정을 권고하거나 이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도 지원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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