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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 판박이 사건…합의했지만 항소심서 특가법으로 유죄

중앙일보

입력

이용구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이용구 법무부 차관. 연합뉴스

멈춰선 택시에서 운전기사의 팔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한 승객이 피해자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특가법(운행 중 운전자 폭행)이 적용돼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 승객은 “운행이 종료됐었다”며 특가법 적용에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특가법 적용 여부가 피고인과의 운행 종료와는 무관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용구 판박이 사건, 멈춰선 택시에서 폭행

서울 북부지방법원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서울 북부지방법원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홍창우)는 지난 5일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위반(운행 중 운전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회사원 김모(48)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밤 10시쯤 지인과 함께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던 중 택시기사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자 택시기사에게 욕설하고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경로당 앞에 멈춰선 택시에서 내린 김씨는 조수석과 운전석 문을 번갈아 열며 “차에서 내리라”는 취지의 욕설과 함께 택시기사의 팔을 수차례 잡아당겼다. 김씨에게는 특가법과 폭행, 모욕 혐의가 적용됐다.

피해자와 합의했지만 특가법 적용 유죄

검찰의 기소 전 김씨는 택시기사와 합의해 1심에서 폭행·모욕죄의 공소사실은 기각됐다. 그러나 특가법 위반은 그대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됐다. 특가법 위반 혐의는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과 달리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씨는 1심 선고 후 즉각 항소해 특가법 적용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팔을 잡아당긴 것이 아닌 팔을 가볍게 건드린 것으로 폭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당시 택시가 멈춰있었기 때문에 특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특가법 제5조 10항은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명시하고 있다.

法, ‘공중의 안전’·‘운행 의사’ 기준 제시

그러나 재판부는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에 김씨가 택시기사의 팔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나타나 있고, 당시 행위의 목적·의도·정황 등을 종합할 때 팔을 잡아당기는 행동이 ‘폭행’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봤다. 이어 특가법 적용 여부를 검토하며 ‘공중의 교통안전·질서’와 ‘운행 의사’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거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경로당 앞으로서 불특정 다수인이 통행하는 곳이었다”며 “만일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충분한 장소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당시 해당 장소에 동네 주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택시기사의 진술에 주목했다.

“‘운행 중’ 판단은 운전자 의사 기준으로 판단”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택시기사 폭행 관련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택시기사 폭행 관련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또 김씨의 운행 종료 주장에 대해 ‘운행 중’의 판단은 “피해자인 운전자의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운전자의 계속적인 운행 의사란 반드시 승객과의 관계에서 운행이 종료되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을 하차시킨 후에도 또 다른 승객을 상대로 택시 영업을 하기 위해 이 택시의 운행을 계속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특가법의 범행은 운전자 개인의 신체에 대한 위법한 침해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칫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며 “주변의 제삼자에게도 중대한 피해를 줄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수사 중인 이용구 사건에도 적용되나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1월 6일 오후 11시 30분쯤 택시기사를 폭행한 서울 서초동의 한 아파트 앞 도로. 박현주 기자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11월 6일 오후 11시 30분쯤 택시기사를 폭행한 서울 서초동의 한 아파트 앞 도로. 박현주 기자

한편 이번 항소심 판결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재수사에도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쏠린다. 이 차관은 변호사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6일 밤 자택인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앞에서 택시가 정차한 가운데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나 당시 경찰이 특가법이 아닌 단순폭행으로 사건을 내사 종결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고,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져 현재 검찰이 관련 사건을 재수사 중이다.

내사종결 사유에 대해 경찰은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된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는 운전 중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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