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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운드 오브 뮤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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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또래 코흘리개들보다 약간 더 많이 극장 나들이를 했다는 건 소소한 ‘라떼 시절’ 자랑거리다. 자식의 문화적 소양을 고려했던 어머니의 사려 깊음 덕택이다. 물론 선택권은 없었다.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대한 꼬맹이의 열망은 끝내 어머니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어머니가 엄선했던 명단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 있었다.

스크린에서 목격했던 이미지가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진 않다. 하지만 꽤 즐거운 경험이었던 듯하다. 제목도 기억 못 하는 주제에 제멋대로 ‘춤추고 노래하고’라고 지칭하면서 자주 그 영화를 언급했으니 말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아마 ‘안티’가 가장 적은 영화일 것이다. ‘3세부터 노인까지 모두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첫 개봉 당시의 광고 문구대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일등공신은 역시 ‘도레미 송’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잘 가요, 안녕’ ‘외로운 염소 지기’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넘버들과 놀이에 가까울 정도로 신났던 춤사위다. 그 모든 가무(歌舞)를 넉넉하게 품어낸 오스트리아의 대자연 또한 시선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생명력이 강해지는 듯한 통시대성도 놀랍다. 아리아나 그란데나 포레스텔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음악가들이 끝없이 재인용, 재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폰 트랩 대령 역의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91세를 일기로 작고하면서 이 영화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영화에서 개성 있는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했고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명배우였지만 대중은 늘 그를 폰 트랩으로 기억했다. 본인도 이를 콤플렉스로 여겼던 듯 간혹 이 영화와 자신의 배역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도 스포트라이트는 주로 마리아 역의 줄리 앤드류스가 받았다. 하지만 만리타국의 음악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에델바이스’의 가창자라는 영광은 대대손손 온전히 그의 것이다. 고종명(考終命)이다.

가족 상봉이 불투명해진 우울한 설날, 틀림없이 어디에선가는 방영해줄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간접 체험해보는 건 어떨까. 거짓말과 위선으로 얼룩진,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달리 고전은 언제 다시 꺼내봐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