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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바꾼 설 상차림…대목 앞둔 남대문시장 텅 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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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완제품으로 판매 중인 명절 음식 투 고(TO GO) 상품 모습.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완제품으로 판매 중인 명절 음식 투 고(TO GO) 상품 모습.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홍모(42)씨는 올해 설에는 경기도 연천의 아버지댁을 홀로 찾는다. 아내와 딸은 서울 집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홍씨는 7일 “장손인 아버지가 올해 설엔 차례를 안 지내겠다고 선언하셨다. 일흔 된 어머니는 ‘시집온 지 50년 만에 차례를 안 지낸다. 계탔다’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그는 “맏며느리인 어머니께선 명절이면 20인분의 상차림을 하셨지만 올해는 직계가족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준비하신다”고 했다.

전통시장은 설 대목 실종에 울상

설날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방역조치인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적용되면서 차례를 포기하거나 제사상을 차려도 간소하게 준비하겠다는 추세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만 해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은 귀성 자제였지만, 올해 설날은 가족 간에도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위반하면 과태료 10만원을 물린다. 코로나19의 강화한 방역지침은 설을 앞둔 제수 용품 시장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온라인에선 용량을 확 줄인 소량 상품이 잘 팔리고, 설 대목을 기대했던 전통시장은 발길이 끊기다시피해 울상이다.

전통시장 설 대목 '실종' 

설 연휴를 앞둔 주말인 7일 서울 남대문 시장 한복 판매점에 아동 한복이 걸려있다. 업계에 따르면 남대문시장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이후 내수만으로 굴러가던 시장보다 타격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설 연휴를 앞둔 주말인 7일 서울 남대문 시장 한복 판매점에 아동 한복이 걸려있다. 업계에 따르면 남대문시장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이후 내수만으로 굴러가던 시장보다 타격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설 직전 주말인 지난 6일 찾은 서울 남대문시장은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시장통이 한산했다. 상점 앞은 썰렁했고 흥정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활기가 없었다. 만두나 도너츠, 호떡 등 먹거리를 파는 매대 앞에만 예닐곱명이 줄을 선 모습이 보였다. 시장 입구에서 유아 한복집을 파는 이모씨는 “예년 설이면 설빔을 사러 오는 손님 발길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후 늦도록 열 댓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축산물을 팔고 있는 조경옥씨는 “말그대로 대목이 사라졌다”며 “설 선물세트도 거의 안 나가서 죽을 맛”이라고 했다. 그는 “고기를 사가도 넉넉히 구입하는 손님은 거의 없고 대부분 조금씩만 사간다. 이 정도로는 이문이 안 남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특별시상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소재 전통시장은 2019년보다 적게는 20%, 많게는 80%까지 매출이 빠졌다. 편정수 상인연합회장은 “지난 한해 동안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임대료 내기도 힘든 곳이 많은데 방역지침이 강화돼 그나마 기대했던 설 대목도 전혀 살아나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설 상차림은 소용량으로 간소하게  

코로나19로 비대면을 원하는 쇼핑객이 몰리는 온라인 쇼핑몰에선 간편식 설 상차림이나 소용량 판매 추세가 두드러진다. 온라인쇼핑몰인 SSG닷컴에선 최근 2주간 간단히 굽거나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 제수음식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0% 늘었다. 동그랑땡·떡갈비는 355%, 모듬전은 120%, 소고기버섯잡채나 해물부추전은 160%씩 매출이 늘었다. 제수음식도 예년과 달리 소용량 상품이 잘 팔린다. 최근 2주간 한우국거리는 300g보다 150g짜리가 5배 더 많이 팔렸다. 양파도 2.5㎏보다 1㎏ 제품이 3배 넘게 잘 나갔다.

소용량 제수용품 선호. 그래픽=김은교 ki m.eungyo@joongang.co.kr

소용량 제수용품 선호. 그래픽=김은교 ki m.eungyo@joongang.co.kr

또 다른 온라인쇼핑몰인 마켓컬리에선 아예 완제품으로 판매되는 설 상차림 세트의 인기가 좋다. 잡채, 갈비찜, 모둠전 등을 한 데 모아 담은 명절 상차림 세트(10만원)는 지난 1일~4일 판매량이 전년 추석 동기간 대비 56% 증가했다. 수령일을 설 전날(11일)로 선택한 비중이 52%, 설 당일 오전(12일)도 48%나 된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코로나19인데다 가족도 적게 모이다보니, 일일이 장을 보러 다니기보다 간편하게 상차림을 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절용 단품 음식도 전년 추석 때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의 온라인몰인 더반찬의 프리미엄 차례상 세트(25만원) 판매량도 전년 추석 대비 20% 늘었다. 각종 제수음식과 과일 등 차례상 완제품을 설 전날 배송해준다.

마켓컬리의 명절 상차림 등 작년 추석 대비 판매 증가율. 그래픽=김은교 ki m.eungyo@joongang.co.kr

마켓컬리의 명절 상차림 등 작년 추석 대비 판매 증가율. 그래픽=김은교 ki m.eungyo@joongang.co.kr

한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설 차례상 구매비용 조사 결과 전통시장에서는 26만7392원, 대형유통업체에서는 37만4370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각각 15.8%, 17.4% 상승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달걀, 과일, 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물가도 오르고 차례도 간소하게 지내다보니 매장마다 소용량, 간편식 제품 가짓수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정ㆍ이병준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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