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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바이든 시대에 필요한 한국외교의 세 가지 전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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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호 31면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지난 4일 아침 한미 정상이 통화했다. 언론은 두 정상이 빠른 시간 안에 “포괄적 대북전략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고, “한미동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한일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북한보다 바이든 외교팀 설득 우선 #전략적 모호성보다 확실성 보여야 #대미·대중외교 입지 강화 위해서도 #실질적 한일관계 개선이 꼭 필요해

사실 한국 외교의 세 가지 당면과제가 모두 거론된 셈이다. 문제는 이들 세 가지 이슈에 제각각 북한, 중국, 일본이 걸려있다는 점이다. 두 정상 간에 합의한 것들을 한국 정부가 이행해나가려면 미국뿐 아니라 이 세 나라와의 관계에서 외교의 방향을 상당 정도 틀어야 한다. 관성의 힘은 항상 강하고 정책 재조정에는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우리 정부에게 상당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는 “포괄적 대북전략을 함께 만들어” 이행하는 문제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아마도 2018년의 추억이 강할 것이다. 2017년의 고조된 긴장을 평창올림픽을 통해 협상 국면으로 전환시켰고 3번의 남북정상회담, 3번의 북미 정상 간 만남이 있었다. 아마 올여름 도쿄올림픽 때 제2의 평창이벤트를 만들어보고 싶어 할지 모른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바이든 팀의 시각은 우리가 상상하기보다 훨씬 더 냉정하다. 그들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TV쇼였고, 김정은은 트럼프를 가지고 놀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김정은 위원장의 관심도 온통 미국에 가 있지, 한국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정부의 안타까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대남 태도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북한에 큰 기대를 걸기보다 미국에 전념하는 것이 낫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수많은 다급한 어젠다 중에서 북한 문제를 위로 끌어올려 협상 재개를 앞당기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그동안의 비현실적인 접근보다 동시병행, 단계적인 접근법으로 바꾸게 할 것인가, 협상팀을 중시하는 상향식 접근법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필요할 때 정상 간에 소통도 하도록 할 것인가, 만일 이란식 핵 타결 방안을 추진한다면 그 틀과 로드맵을 짜는데 어떻게 우리 의견을 반영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미국을 설득할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구축의 관점에서 실질적인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선데이 칼럼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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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한미동맹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약속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걸려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위해 지난 20여 년간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데 주력해 온 나라다. 이런저런 심리전술과 경제제재로 자기네 의지를 주변국들에 관철시키는 데 명수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하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모호성’이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외교의 원칙과 방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가치보다 주로 돈 문제에 집착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 자기네 관심사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썼고 심지어 한일관계 악화도 방관했다. 그래서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많았고 행동반경도 넓었다. ‘전략적 모호성’을 활용하기 용이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매우 다르다. 그는 민주주의, 동맹,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중도 현실주의 외교를 구사하려 한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미국의 동맹 중 가장 성공한 사례이다. 2003년 외교장관 시절 워싱턴에서 상원외교위원장이던 그를 두세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요청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들어줄 수 있고 무엇은 곤란한지, 그리고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협조해달라고 요청할 것인지, 일종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 경우 가치동맹, 글로벌 협력동맹 차원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와 동맹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간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줘야 한다. 다만 한반도에서 한미동맹의 군사적 타깃을 중국으로까지 확대하지 말자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평화 구축문제를 남 일 보듯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좀 도와달라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도 헌법에 민주주의를 규정한 국가정체성 차원에서 우리는 미국과 가치동맹, 글로벌 이슈 해결에 협력하는 동맹을 할 수밖에 없다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중국의 반발이 있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용 지불이 불가피하다면 국민 여론에 호소하며 단합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길게 볼 때 그게 나은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문제다. 국내 유권자를 의식해서 감성적으로 한일관계를 다루는 경우, 외교적으로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큰 문제였고 한일 간의 지정학적 입지의 차이에 한일 갈등의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문제는 별도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법적 판결이 미치는 파장을 우회해서 막아낼 그동안 여기저기서 제안된 정치적 해법들을 검토해서 실제로 실천해야 한다. 한일관계 개선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의 외교 입지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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