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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조롱에, KBS 내부서도 "수신료 인상 물건너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수신료 현실화는 우리의 숙원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수신료 현실화는 우리의 숙원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4일 KBS의 한 관계자는 수신료 인상에 관해 묻자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김 아나운서 여권 불리한 보도 삭제 #"1억 연봉 부러우면 입사하라" 파장 #박성중, "KBS 수신료 1000억원 증가"

지난달 27일 KBS는 수신료 인상안을 이사회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2014년 국회 제출했다가 무산된 이래 7년 만의 시도였다.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수신료 현실화는 우리의 숙원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로 KBS는 수신료 인상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인상안을 올려놓자마자 악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KBS노동조합(1노조)은 지난 1일 KBS1 라디오의 '주말 14시 뉴스' 진행자인 김모 아나운서를 조사한 결과, 작년 10~12월 임의적 또는 자의적으로 방송한 20여 건의 추가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중요도가 높아 '톱기사'에 배치됐던 '北 오늘 새벽 열병식 실시 정황 포착'이나 '검찰, 강기정 前 청와대 수석 GPS 기록확보…라임 김봉현 수사' 등 청와대에 불리한 내용은 자체적으로 삭제했다. 또 본래 기사에 없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고 밝히고 북과 남이 다시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같은 문장을 자의적으로 넣기도 했다.

여기에 수신료 인상 추진 때마다 불거졌던 무보직 억대 연봉자 논란도 커졌다. 김웅 의원(국민의힘)이 억대 연봉자 비율이 전 직원의 60%라고 주장하자, KBS 측은 "60%가 아닌 46%"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폐업과 휴업이 속출하면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러한 대응은 오히려 비판을 부추겼다. 여기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KBS 직원이라고 밝힌 이용자가 “억대 연봉이 부러우면 입사하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은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KBS노동조합과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전문가연대’가 27일 편파방송 논란을 빚은 김모 아나운서를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 KBS노동조합]

KBS노동조합과 ‘공영방송을 사랑하는 전문가연대’가 27일 편파방송 논란을 빚은 김모 아나운서를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 KBS노동조합]

KBS는 김 아나운서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고, 커뮤니티에 올려진 글에 대해서도 공식으로 사과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여론은 '인상 불가'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KBS의 한 이사는 "수신료 인상은 국민 동의 얻기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이를 위해서 구조조정 등 자구 노력을 충분히 보여주면서 국민의 마음을 돌렸어야 하는데, 너무나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상적인 말로만 '자구 노력'을 내세워봐야 소용없다. KBS의 비대한 몸집을 줄이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회 의결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신료 인상에 반대해왔던 야당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측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수신료 인상보다 인적 구조조정이나 편파방송에 대한 심의 강화 등 자구책 마련이 먼저다. 선행조치 없이는 절대로 올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KBS의 수신료 수입은 지난 10년간 1000억여원 증가했는데도 마치 수신료가 하나도 늘지 않은 것처럼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KBS 수신료는 6790억2400만원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1년 5778억8000만원에 비해 1011억원 늘어난 수치다. 단순 계산으로는 매년 100억원씩 증가한 것이다. 박 의원 측은 1인 가구 증가로 TV 수상기 보유 가구 등이 많아진 데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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