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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버린 게 아냐…” 잃어버린 딸 36년 만에 ‘언택트 상봉’

중앙일보

입력

36년만에 화상통화로 만난 모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36년만에 화상통화로 만난 모녀.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엄마의 통곡엔 지난 36년의 한이 서려 있었다.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딸에게도 그 진심이 전해졌을까. 같은 기간 이국땅에서 때론 친부모를 원망하며 살았을 딸은 “아이 러브 유. 아이 미스 유(I love you. I miss you)”라고 말했다. 엄마와 딸의 36년 만의 재회는 화상 전화와 통역의 도움으로 지난 3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진행됐다.

잃어버린 막내딸 미국으로 입양돼

모니터를 지켜보며 울먹거리는 어머니 김씨와 오빠.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모니터를 지켜보며 울먹거리는 어머니 김씨와 오빠.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36년 전 길을 잃고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이모(41·여)씨는 경찰 등의 도움으로 어머니(67)와 큰 오빠(46)를 다시 만났다. 지난 3일 이뤄진 상봉은 한국과 미국을 인터넷 화상 통화로 연결하는 ‘언택트(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졌다.

모녀의 대화는 통역의 도움으로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만난 딸에게 엄마는 연신 “널 잃어버린 거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딸은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느낌이라 늘 외로웠다”며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2남 1녀 중 막내였던 이씨는 여섯 살이던 1985년 6월 친구들과 다른 동네로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이후 아동보호시설이 임시 보호하다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씨가 당시 본인 이름만 알고 가족들의 이름이나 집 주소 등 다른 정보는 기억하지 못해 아동보호시설이 이씨의 가족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 입장에선 부모가 자신을 버린 거로 알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씨 부모는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특히 아버지가 이씨 실종 직후부터 약 4년 동안 성남 일대 교회나 관공서를 돌며 이씨를 찾으러 다녔다. 이씨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부모는 딸이 죽었을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지내게 됐다.

이씨도 가족을 애타게 찾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년이 된 후 가족을 찾고자 했으나 의사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외교부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한인 입양인의 가족 찾기를 도와준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LA 총영사관으로부터 이씨의 가족 찾기를 의뢰받은 아동권리보장원은 당시 입양기록 내용 등을 토대로 이씨가 실종 아동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렇게 실종 당시 관할서인 성남중원경찰서가 아동권리보장원의 수사 요청을 받게 됐다.

딸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숨져 

36년만에 '언택트'로 만난 이씨와 가족.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36년만에 '언택트'로 만난 이씨와 가족.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성남중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수사팀은 이씨의 입양 기록을 분석하고 입양인과 e메일로 60차례 이상 연락하며 이씨 가족으로 추정되는 1396명을 추려냈다. 이들의 가족 관계, 주소지 변동 이력 등을 살핀 끝에 이씨 친모와 오빠들을 찾아냈다. 유전자 검사 결과도 일치했다. 수사 시작 3~4개월 만이었다.

“아버지가 슬을 먹고 눈을 다쳤다”는 이씨의 기억은 수사 대상을 줄이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 아버지는 평생 그리워하던 딸을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해 9월 사망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이 아버지가 딸을 못 보고 돌아가신 걸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딸 이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끝나면 한국을 찾아 가족을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을 잃어버리고 나서 힘들게 살아왔다. 살아생전에 만나게 돼서 정말 감사하다”며 기쁨과 회한이 뒤섞인 듯한 눈물을 흘렸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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