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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자사주” 짬짜면 같은 성과급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중구 을지로 T타워 본사. [뉴스1]

서울 중구 을지로 T타워 본사. [뉴스1]

김모 SK텔레콤 매니저는 조만간 지급되는 성과급 1000만원 중 절반은 현금, 나머지 절반은 자사주로 받을 예정이다. 이 회사가 새로 도입한 자사주 성과급 제도를 활용해서다.

김 매니저는 자사주 20주(약 490만원)를 받기로 결정했다. 그가 이 주식을 1년 이상 갖고 있으면 취득한 날 주가의 10%를 추가 보너스로 받을 수 있다. SK텔레콤의 주가는 3일 24만5000원에 마감했는데, 1년 뒤 주가가 어떻게 움직여도 김 매니저는 취득가격의 10%인 49만원을 현금으로 받게 된다. 주가가 오르면 그만큼 차익이 커지고, 떨어졌을 때도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그래픽 참조〉

김 매니저 자사주 지급 1년 후 시뮬레이션 해보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 매니저 자사주 지급 1년 후 시뮬레이션 해보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임원뿐 아니라 모든 직원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최근 SK하이닉스 등에서 성과급 산정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사주 성과급’이 새로운 트렌드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가 오를 가능성 높은 기업들에서 인기

SK텔레콤은 지난해 성과급을 현금 또는 자사주로 지급한다고 3일 밝혔다. 성과급을 현금과 자사주를 섞어서 지급하는 ‘구성원 주주 참여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가 올해 지급하는 자사주는 302억1859만원(12만3090주) 규모다. 국내 주요 대기업 가운데 자사주 성과급을 직원에게 확대 지급하는 것은 SK텔레콤이 처음이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성과급을 기존처럼 현금으로 받거나 자사주를 10주 단위로 쪼개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다. 이장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쉽게 예를 들자면 ‘짬짜면’ 같은 보너스”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로열티와 동기 부여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자본운용 측면에서도 현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보다 유리해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자사주를 받은 임직원들은 주가가 오르면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자사주를 1년 이상 보유하면 취득시점 주가의 10%를 추가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다. 이날 SK텔레콤의 종가가 24만5000원임을 고려하면 1년만 가지고 있어도 주당 2만4500원을 받을 수 있다.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네이버 본사. [뉴스1]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네이버 본사. [뉴스1]

한성숙 대표 6일 만에 1550만원 벌어

네이버는 지난달 28일 임원 90명에게 자사주 상여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매출 5조3000억원, 영업이익 1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따른 상여금 성격이다. 한성숙 대표가 3억5500만원(1000주),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와 박상진 재무책임자(CFO)가 각각 2억4800억원 등 모두 31억3100만원어치(8820주)였다. 더욱이 이 회사가 성과급으로 지급된 자사주는 보호예수 기간이 없어 언제든 처분 가능하다. 주식을 받을 당시 네이버 주가가 35만5000원이었고, 3일 종가가 37만500원이므로 한 대표는 엿새 만에 1550만원의 가욋돈을 벌었다.

역시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반도체 장비업체인 한미반도체도 자사주 지급을 검토 중이다. 성과급 규모는 100억원대로 전망된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은 “임직원 1인당 평균 1900만원 수준으로 자사주 지급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지급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한때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자사주 성과급을 통해 100억원대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주식 일부를 STX복지재단에 기부했다.

로열티 키우고 내실 다지는 ‘두 마리 토끼’ 될까

자사주 지급은 주가 상승이 임직원의 실질적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인센티브로 꼽힌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큰 기업은 자사주를 갖고 있는 게 긍정적 효과가 있어 직원들도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점에서 주로 정보기술·바이오 분야의 기업들이 도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장희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난 MZ세대들이 대거 회사원이 되면서 ‘공정’이 주요한 테마로 등장했다”며 “일부 기업에서 ‘성과급 산정방식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자사주 지급이 (성과급의) 보조적 차원으로는 검토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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