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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올인’ 승부사의 경고 “최상의 먹잇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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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검은 돌 흰 돌 2/2

검은 돌 흰 돌 2/2

코로나 시대에 강원랜드 카지노가 문을 닫았다. 말 많던 해외 카지노 원정도 막혔다. 저절로 도박과의 거리 두기를 하겠구나, 이 기회에 중독이 치유된다면 바이러스가 좋은 일도 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주말 차민수씨의 회고록 『미스터 트와이스』를 읽으면서 그게 순진한 생각임을 알게 됐다. 이미 성업 중인 온라인 도박을 깜박한 것이다.

차민수 『미스터 트와이스』 출간 #바둑·포커 아우른 인생 70년 회고

1990년 이후 인터넷 카지노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캐시를 충전해 포커를 하는 사이트들은 대부분 사기이고 불법이다. 로봇, 줄여서 ‘봇’이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대신 게임을 하거나 서버에서 여러 사람의 패를 한꺼번에 보며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개인은 이길 수 없다. 평생 승부로 살아왔고 이제 70줄에 들어선 세계 톱클래스 포커 플레이어의 얘기다. 오늘도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얘기다.

차민수씨는 한국기원 프로기사회 회장이다. 그의 인생은 ‘포커’ 승부로 점철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엔 ‘바둑’이라는 또 다른 승부가 존재한다. 영등포 부잣집 막내였던 그는 어릴 때부터 당수, 쿵후, 스케이트, 수영,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 등을 배웠다. 미술도 뒤늦게 배워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가 이 수많은 종목 중에서 포커와 바둑으로 기울어진 것은 수학에 재능이 있었고 감각과 배짱을 타고난 탓이었다.

그는 프로기사가 되고 나서 미국에 건너갔지만, 미국에 간 이후는 ‘불타는 듯한’ 라스베이거스에 매료되어 포커의 최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유소 종업원, 페인트칠 사업 등을 전전하며 갱들과 싸우고 아내에 이혼당하고 문전박대당하며 드디어 들어선 포커의 세계. 그러나 이곳은 IQ 180의 천재들도 울고 가는 치열한 무대였다.

포커 실력이 겨우 아마추어 6급 정도일 때, 바둑을 좋아하는 포커학 교수 칩 존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존슨은 포커가 운칠기삼이 아닌 확률게임임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줬다. 바둑에 정석이 있듯 포커에도 법칙이 있었다. 눈을 뜬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당시 세계랭킹 1위 칩 리즈와의 게임 장면이 나온다. 차민수의 미국에서의 이름은 지미 차. 카지노에서의 이름은 지미. 그가 7일 연속 칩 리즈를 이기자 이번엔 미스터 트와이스라 불리게 되는 장면이다.

이런 얘기들은 드라마 ‘올인’(2003)에 녹아있다. 처음엔 소설 ‘올인’을 드라마로 만들자는 SBS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다. 한국에서는 포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그런 얘기로 유명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설득은 집요했다. 주인공 이병헌씨도 세 차례 방문하여 함께 일주일씩 여행했다. ‘올인’은 시청률 50%에 이르렀다.

1988년, 차민수는 후지쓰배 세계바둑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한다. 이곳에서 그는 강한 일본 9단 두 명을 잇달아 꺾고 8강에 진출한다. 나도 마침 그곳에 있었는데 다들 넋이 나갔던 기억이 있다. “포커로 일 년 수입이 수백만 달러” “바둑돌을 14년 만에 다시 잡았다”는 얘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듬해 일본 최강 조치훈을 꺾고 또다시 8강에 오른다.

세계의 카지노에서는 각종 포커대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 월드시리즈는 6~8월 거의 매일 열리는데 상금 규모는 40억~1000억에 달한다. 천재들이 환상을 품고 포커에 몰리는 이유다. 최근엔 포커가 마인드 스포츠란 인식이 높아져 포커의 한 종목인 텍사스홀덤은 2028년 LA 올림픽 시범종목 후보에도 올랐단다. 그러나 현실의 포커는 속임수도 많고 타짜도 많다. 한국의 강남구를 예로 들면 이곳에만 500명 넘는 타짜가 살고 있고 조금 큰 판엔 어김없이 이들이 끼어있다고 보면 된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학벌 좋고 머리 좋고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최상의 먹잇감이라고 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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