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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KGB에 영국 정보원 500명 신원 넘긴 ‘두더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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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호 16면

[세계를 흔든 스파이]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

영국 MI6 소속으로 소련 KGB에 기밀 정보를 넘긴 이중스파이 조지 블레이크의 1950년대 사진(동그라미 안). [중앙포토]

영국 MI6 소속으로 소련 KGB에 기밀 정보를 넘긴 이중스파이 조지 블레이크의 1950년대 사진(동그라미 안).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26일 냉전시대 영국의 이중 스파이 조지 블레이크(1922~2020)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98세. 북미와 유럽은 물론 중동·동남아 등 거의 전 세계의 매체가 블레이크의 사망을 전하고 일대기를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정보전과 방첩의 냉혹한 세계를 시리즈로 살펴본다. 이는 냉전이 사라지고 미·중 갈등 등 변혁기를 맞은 지금도 여전히 국민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6·25 때 북한 억류 중 사상 전환 #영 MI6 요원 활동하며 소련과 내통 #블레이크 배신, 영국 첩보망 초토화 #체포돼 43년 형 받았지만 탈옥 #소련서 영웅으로 살다 작년 사망

블레이크는 보통 스파이가 아니었다. 정보 세계 은어를 빌리면, 프롤(현장요원)로 활동하며 커튼(방첩 조직)의 눈을 속이고 적을 위해 두더지(이중스파이)로 활동한 지능적인 반역자였다. 첩보·비밀·열정·신념 등 첩보전의 기본 요소에 더해 변절·배신·음모·탈옥·망명 등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알려진 삶은 어느 스파이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다. 그의 혈통은 영국과도, 러시아와도 관련 없다. 1922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조지 베하르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 아버지 앨버트는 이집트 태생의 세파르디(중동·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으로 참전해 훈장을 받고 국적을 얻었다. 어머니 캐서린은 네덜란드 출신 개신교도다.

네덜란드 태생, 2차대전 때 영국 피신

블레이크는 40년 2차대전이 발발하고 네덜란드가 나치에 점령되자 레지스탕스에서 전령으로 활동했다. 43년 스페인과 지브롤터를 거쳐 영국으로 탈출해 먼저 와있던 어머니와 재회했다. 그는 성을 영국식인 블레이크로 바꾸고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영국군은 그를 44년 해외정보국(MI6)에 보내 네덜란드 관련 임무를 맡겼다.

블레이크는 전쟁이 끝나자 46년 MI6 요원으로 서독 함부르크의 레지던시(해외 지부)에 파견돼 독일 U보트 선장들을 심문했다. 이듬해 케임브리지대 다우닝 칼리지에서 러시아어 위탁교육을 받았다. 블레이크는 48년에야 처음으로 외교공관 근무에 들어갔다. 그해 들어선 대한민국 주재 영국대사관의 부영사로 서울 정동에 부임해 북한·소련·중국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50년 북한군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새로운 고난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외교관으로 억류됐지만, 영국군이 참전하자 포로 취급을 받으며 북한 지역을 떠돌았다. 놀랍게도 그는 그동안 공산주의자로 사상을 전향했다.

53년 휴전회담이 끝나기 직전 풀려나 영국에 귀환한 그는 이듬해 MI6에서 비서로 근무하던  길리언 엘런과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55년 MI6 요원으로 서베를린 레지던시에 파견돼 두더지로 활용할 소련군 장교 포섭 임무를 맡았다. 동시에 그 자신이 소련에 서방 정보를 넘겨주는 이중스파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소련 입장에서 그는 ‘보물’이었다. 그는 KGB 내부에서 영국 MI6에 정보를 제공하던 이중스파이 40명의 명단을 넘겼다. 영국의 소련·동유럽의 정보망이 위협받을 규모다.

KGB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들을 즉각 처형하면 블레이크가 발각될 위험이 커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소련은 슈메이커(가짜 문서 작성자)를 동원해 KGB에 잠입한 ‘두더지’에게 역정보를 제공했다. 피아니스트(무선통신요원)를 통해 두더지들이 제공한 엉터리 정보를 확인한 네이버스(상대국, 여기선 영국 정보요원)는 이들을 정리하게 됐을 것이다. 결국 두더지들은 론더리(심문소)에 끌려가 우락부락한 고릴라(보안요원)들에 둘러싸여 무시무시한 취조를 당하다가 이슬로 사라져갔다.

블레이크의 이중스파이 행위는 영국 정보당국의 방첩 요원들도, KGB에 잠입한 영국 이중스파이도 파악하지 못했다. 영국 당국은 61년 폴란드 정보요원 미할 골레네브스키가 서방에 망명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서야 비로소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블레이크는 체포돼 이중스파이 행위를 자백했다. 그는 “북한에서 고문·협박 없이 스스로 전향해 자원해서 소련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확신범이었다. 재판 끝에 그는 4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영국 사법 사상 최장기 형이다. 그의 부인은 이혼하고 세 아들의 양육권을 확보했다.

블레이크는 90년 BBC 다큐멘터리에 나와 “내 정보가 소련 내 영국 정보원 500여 명의 체포와 처형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배신자의 암약으로 스파이를 막는 방첩 활동에 구멍이 날 경우 치러야 할 피의 대가다.

블레이크, KGB 스파이 요원 교육도

블레이크의 ‘스릴러’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66년 교도소 복역 중 감옥에서 만난 아일랜드 활동가와 반핵운동가 도움으로 런던 서부 해머스미스의 감옥에서 탈출했다. 이중스파이 활동과 탈옥으로 영국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다. 2차대전 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미국에 밀린 것은 물론 정보와 방첩 활동에서도 구멍이 뚫렸다. 스파이와 반역자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대가다. 정보와 방첩은 곧 국력이고 국민을 지키는 능력임을 보여준다.

블레이크는 서독을 거쳐 소련으로 탈출했다. 영국의 반역자는 영웅이 돼 모스크바에 안착했다. KGB의 대령으로 스파이 요원 교육 등을 맡다가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7년 85세 생일을 맞은 그에게 우정훈장을 수여했다. 교류·친선을 촉진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으로 94년 친미파로 분류되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제정했다.

중요한 건 블레이크의 활동 시기다. 50년대는 냉전이 본격화한 ‘전환 시대’다. 역사적 변환기에는 정보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스파이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정보·외교·국방 등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분야일수록 반역자는 독버섯처럼 자란다. 블레이크의 이중스파이 활동은 시대를 초월해 정보와 방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블레이크 “영국에 속한 적 없어 배신한 적도 없다”

조지 블레이크는 왜 공산주의자로 전향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에 충성했던 블레이크가 변신한 배경은 크게 4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사상적 충격설이다. 그는 2006년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선 “북한에서 『자본론』 읽고 폭격을 목격 뒤 자발적으로 공산주의로 전향했다”고 주장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징병되고 노인·여성·어린이들만 있는 지역에 폭격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친척 영향설이다. 그는 91년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이집트·프랑스 공산주의자인 사촌형 앙리 퀴리엘의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블레이크는 13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이집트 카이로의 고모집에서 영국 학교에 다녔는데 그 당시 10살이 많은 사촌형을 만났다. 퀴리엘은 이집트에서 공산주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프랑스로 추방됐으며 파리에서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살해됐다.

셋째는 대학 영향설이다. 그는 90년 BBC 인터뷰에서 “50년대 케임브리지대에서 러시아어를 배울 때 공산주의에 심취했다”는 말을 했다. 대학의 진보적 분위기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반대로 대부분 상류층 출신인 케임브리지 학생들 사이에서 유대계 아버지와 네덜란드 어머니를 둔 그가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는 2012년 90세 생일을 맞아 모스크바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나는 영국인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며 “영국에 속한 적이 없어 배신한 적도 없다”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가 안보를 책임진 부처에서 근무하는 공직자의 국가관을 제대로 점검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넷째는 생존수단설이다. 포로 생활 중 그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해 소련 MGB(국가보안부)의 비밀 정보원으로 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어 실력이 이를 뒷받침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고문도 압박도 받은 적 없이 자발적으로 공산주의자가 됐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전쟁 당시 북한의 의식주와 의료·이동 사정을 감안하면 포로 생활이 절대 녹록지 않았을 것이란 정황을 비춰볼 때 전향으로 특혜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2차대전·한국전쟁·전향·이중스파이·발각·탈옥·망명에 이르는 극적인 사건으로 블레이크는 수많은 스파이 문학작품에 영감을 줬다. 대표적인 작가가 지난해 12월 12일 세상을 떠난 영국 스파이 소설 작가 존 르카레(1931~2020)다. 본명이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월인 르카레는 국내정보기관인 MI5와 해외정보기관인 MI6 요원 출신으로 주서독 영국대사관 등에 근무한 현장 요원 출신이다. 출세작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73년)』에서 이중스파이 활동을 위해 동독 정보부에 잠입하는 영국 요원을 다뤘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74년)』는 서커스(영국 비밀정보부)에 침투한 소련 이중스파이를 색출하는 과정을 그렸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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