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이 좋으면 와인이 더 맛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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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을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눈.코.입을 통해 와인의 색.향.맛을 느끼며 와인을 즐긴다고 주장한다. 그런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을 마실 때 꼭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와인 글라스다. 와인 자체의 품질만 좋으면 그만이지 굳이 명품 와인 잔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와인을 마실 때 와인 잔을 챙기는 것은 정장을 입을 때 슬리퍼가 아닌 구두를 챙겨 신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와인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면 일반인들은 "와인을 소주잔이나 맥주잔에 마시면 맛이 달라지냐"고 되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들은 '물론 정장에 슬리퍼를 신어도 어디든 못가는 것은 아니다'며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와인을 담는 잔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와인의 맛이나 느낌이 확연하게 차이난다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찾는 와인 잔은 이렇다. 와인 색이 잘 보이도록 무색 투명하고 매끈해야 한다. 입술의 촉감을 느낄 만큼 얇은 것이 좋다. 와인 향을 가둘 수 있게 몸통이 계란처럼 중간은 볼록하고 윗부분이 좁아져야 한다. 손잡이는 길어야 손가락의 열이 와인에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3분의 1가량 채웠을 때 가장 안정적이어야 하고 잔을 돌려 소용돌이를 일으켜도 넘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반적인 특성 외에도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다른 와인 잔을 고른다. 샴페인과 같은 스파클링 와인은 길쭉한 튤립 모양의 잔을 사용한다. 와인의 탄산 기포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다. 레드 와인 잔은 일반적으로 화이트 잔보다 몸통이 크다. 떫은 맛을 내는 타닌 성분을 부드럽게 즐기기 위한 것이다. 화이트 와인 잔이 작은 것은 마실 때 혀에서 느끼는 맛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잔의 크기는 포도 품종이나 생산 지역에 따라 좀더 세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세계적인 와인 잔 제조업체인 리델(Riedel)의 조지 리델 사장은 "와인 글라스는 와인의 향과 무게와 크기, 맛의 시작과 뒷맛을 제대로 느끼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명품 와인 글라스는 리델을 비롯해 호야.리사모리.스피겔라우.로젠탈 등의 수입 브랜드가 있다. 값은 브랜드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와인 잔 한개에 1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있다.

잔이 비싼 만큼 세척이나 관리를 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세척할 때는 부드러운 천을 사용하고 세제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세제 성분이 잔에 남아 있으면 맛에 영향을 미치고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엔 기포가 올라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와인 전문숍 '르클럽드뱅'의 정담은 매니저는 "전문가용 레드 와인 잔과 화이트 와인 잔 2개 정도만 갖춰도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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