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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장식 투구에 붉은 융 갑옷…조선왕실 군사의례와 첫 만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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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 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갑옷과 투구 등.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 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갑옷과 투구 등.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이래 34번째 특별전인데, 역대 어느 전시보다 가장 ‘남성적’이다. 조선이 문약(文弱)한 나라였다는 선입견을 씻고 군례가 국조오례의 하나였던 50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김충배 전시홍보과장)

고궁박물관, 유물 176건 전시 #디지털 활용한 활쏘기 공간도

19일 개막한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는 일반적으로 고궁박물관 전시하면 연상되는 왕실의 화려·섬세한 유물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에 초점을 맞춰서다. 태조 이성계가 무관 출신이고 휘하의 왕자·장수들도 사병(私兵) 성격이 강한 군사들을 육성해 개국한 것을 고려하면 왕조 출범에서 군사력은 중요한 기반이었다. 유교를 국시로 공표한 조선은 군사력 과시를 국가의례 형태로도 발전시켰다. 군례는 길례(吉禮, 제사의식)·가례(嘉禮, 혼례)·흉례(凶禮, 장례)·빈례(殯禮, 사신 접대)와 함께 국가의 5대 의례에 속했다. 이번 전시에선 이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갑옷과 투구, 무기와 다채로운 군사 깃발 등 유물 176건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게 총 6벌의 갑주(갑옷·투구 세트)다. 19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는데 장수와 일반 군졸 복장이 뚜렷이 구분된다. 장수용의 붉은 융 갑옷은 바깥에 두정(둥글고 볼록한 머리의 못)을 촘촘히 박았고 안으로는 갑찰을 둘러 방호력을 높였다. 임지윤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만 해도 철이나 가죽 갑찰이 옷 바깥으로 드러난 찰갑 형태였는데 후기엔 옷감 안쪽에 갑찰을 달고 금속 두정을 박아 고정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고 했다. 일부 갑주엔 이 같은 갑찰이 없는데 실전이 아니라 의례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속으로 봉황 무늬를 장식한 화려한 투구도 눈길을 끈다.

한쪽 벽면 전체를 30여장의 깃발로 채운 것도 이채롭다. 오늘날과 같은 통신체계가 없을 당시 혼란한 전투 상황에서 명령을 전할 땐 시청각 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신호체계를 형명(形名)이라 하는데, 각종 깃발과 악기라고 이해하면 된다. 압도적인 크기(가로 3.5m, 세로 4m)의 교룡기(국왕을 상징)를 비롯해 5방위를 나타내는 황룡(중앙)·청룡(동)·백호(서)·주작(남)·현무(북)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각의 수호신을 그린 형형색색 깃발은 사기를 북돋우고 국왕의 군사권을 상징했다. 북·징·나각(소라껍질)·나발 등 신호용 악기들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부 ‘조선 국왕의 군사적 노력’과 2부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로 이뤄졌다. 군비발달 혹은 전쟁사 소개는 아니라서 임진왜란·병자호란을 통한 군사적 변화 등을 보여주진 않는다. ‘역덕’(역사 덕후 혹은 애호가)이나 ‘밀덕’(군사 덕후)이 아니고선 의례 유물로 연결고리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임경희 학예연구관은 “군사의례 연구가 극히 드물고 근현대 격변기를 거치며 유물도 많지 않다. 입문 내지 개론 성격의 전시로 추가적인 연구와 고증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시에서 선보인 장수용 갑주 네 벌 가운데 상태가 뛰어난 세 벌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이다.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 등 총 40여 점이 독일에서 건너왔다. 독일은 1883년 한독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조선에 진출해 각종 생활 물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전시장 한쪽엔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활쏘기 체험 공간도 있다. 3월 1일까지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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