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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지하수 삼중수소 오염 심각?…美 NRC 기준은 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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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주)월성원자력본부 월성 1호기(가운데). 월성 1호기는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로 2012년 11월 설계수명(30년)을 마치면서 가동이 정지됐다. 뉴스1

한국수력원자력(주)월성원자력본부 월성 1호기(가운데). 월성 1호기는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로 2012년 11월 설계수명(30년)을 마치면서 가동이 정지됐다. 뉴스1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운영하는 경북 경주 월성원전 부지에서 삼중수소가 고농도로 검출된 것과 관련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부지 경계 지하수 방사능 최대 측정값 #미 NRC 기준 25배…외부 유출 가능성 #한수원 "고농도 오염수는 회수 처리" #정확한 누설지점 모르는 게 큰 문제 #시민.환경단체 현장 공동 조사 요구

시민·환경단체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등에서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한수원 측에서는 누설 사실은 있었지만, 외부로 유출되지 않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월성 원전 수사 물타기와 조직적 가짜뉴스 퍼뜨리기"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월성원전 부지 지하수 오염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

1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월성원전 삼중수소 검출과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 열고 당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

1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월성원전 삼중수소 검출과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 열고 당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

박성중 의원 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원전 관련 가짜뉴스 퍼뜨리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날 "월성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 수소가 검출됐다"고 밝힌 것에 대해 "월성 원전 수사 물타기와 조직적 가짜뉴스 퍼뜨리기"라고 주장했다. 뉴스1

박성중 의원 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월성원전 관련 가짜뉴스 퍼뜨리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날 "월성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 수소가 검출됐다"고 밝힌 것에 대해 "월성 원전 수사 물타기와 조직적 가짜뉴스 퍼뜨리기"라고 주장했다. 뉴스1

논란의 발단은 공개된 한수원 보고서

월성 1호기. [연합뉴스]

월성 1호기. [연합뉴스]

이번 논란이 시작된 것은 한수원이 지난해 6월 작성한 '월성원전 부지 내 지하수 삼중수소 관리현황 및 조치계획'이라는 26페이지짜리 보고서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월성 3호기 인근 맨홀 고인 물에서 2019년 4월 L당 71만3000 베크렐에 이르는 삼중수소 방사능 수치가 측정됐다는 부분이다.

베크렐(Bq)은 방사능을 측정하는 단위다.
삼중수소(Tritium)는 수소의 방사성 동위원소로 원자핵이 양성자 1개와 중성자 2개로 이뤄져 양성자 1개로 구성된 수소보다 약 3배가량 무겁다.

환경단체나 일부 언론, 여당에서는 71만3000 Bq/L이면 한수원의 지하수 배수 계통의 관리기준 4만 Bq/L를 훨씬 초과한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11일 설명자료에서 "71만3000 Bq이 검출됐다는 보도는 발전소 주변 지역이 아닌 원전 건물 내 특정 지점(터빈 건물 하부 지하 배수관로) 1곳에서 일시적으로 검출된 것으로, 해당 지점의 관리 기준치는 없으며, 발견 즉시 액체 폐기물 계통으로 회수해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고 해명했다.

원전 구조상 일부 누설이 일어날 수 있고, 배수로로 배수되는 물에서는 L당 4만 Bq 이하의 양은 법적으로, 즉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배출관리기준)로 허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수원 측은 일부 지점 고인 물의 삼중수소 농도가 높아진 것은 공기 중의 삼중수소가 물로 옮겨온 탓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안전과 미래'의 이정윤 대표는 "회수했다고 하지만 원전 계통 어디에선가 누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고여있는 동안 삼중수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수 관측정 오염 기준 논란

월성원전 내 지하수 관측정과 삼중수소 최대농도(단위:Bq/L). 자료: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월성원전 내 지하수 관측정과 삼중수소 최대농도(단위:Bq/L). 자료: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월성원전 주변에서는 방사성 물질의 비계획적 유출, 즉 의도하지 않은 유출을 감시하기 위해 '보초 우물'에서는 월 1회, '감시 우물'과 '부지경계 우물'에서는 분기별로 1회 방사능을 측정한다.

보초 우물은 지하수 오염 위험도가 높은 계통·구조물 등에서 비계획적 유출을 신속하게 감지하기 위해 설치한 지하수 관정이다.
감시우물은 오염분포 감시를 위해 부지 내에 설치한 우물, '부지경계 우물'은 비계획적 유출물이 부지 외부로 이동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우물이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이 12일 공개한 27개 우물의 삼중수소 방사능 측정치 최대 농도는 ▶보초 우물에서 최대 2만8200 Bq/L ▶감시 우물에서는 최대 3770 Bq/L ▶부지경계 우물에서는 최대 1320 Bq/L까지 측정됐다.

한수원에서는 보초 우물에 대해 배출관리기준인 4만Bq/L를, 감시 우물과 부지경계 우물에 대해서는 관리기준의 10분의 1인 4000 Bq/L 기준을 적용하는데, 이 기준 이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먹는물 기준이 1만Bq/L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부지 밖의 지하수가 삼중수소로 오염됐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기준은 훨씬 엄격하다.

지난 2013년 한수원 중앙연구원 연구팀이 방사선방어학회지에 게재한 논문 '비계획적 방출에 의한 해외 원전 부지 지하수 오염 및 감시 기술현황 분석' 논문에는 "NRC에서는 부지 내 지하수가 음용수로 사용될 경우는 삼중수소 농도가 미국 환경보호청(EPA) 음용수 제한치인 740 Bq/L 이하가 되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음용수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1110 Bq/L 이하가 되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수원 측은 "(미국의 경우) 규제기관에 30일 이내에 보고하는 기준이며, 제재를 받는 규제 기준은 아니다"며 "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원인 분석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보초 우물이나 감시 우물에 동일한 보고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1110 Bq/L 기준을 적용할 경우 보초 우물의 경우 기준의 최대 25배, 감시 우물의 경우 기준의 최대 3배에 해당한다.

특히, 부지경계 우물 중에서도 2곳은 이 기준을 초과했다.
부지경계 우물에서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것은 부지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갈 가능성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1호기(오른쪽). 연합뉴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1호기(오른쪽). 연합뉴스

NRC는 지난 2005년 일리노이주 브레이드우드(Braidwood) 원전 등에서 누설 사건이 발생, 미국 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비계획적 방출에 의한 지하수 오염 여부를 조사한 뒤 기준을 도입했다.

당시 브레이드우드 원전 부지 내 우물에서는 8325~9250 Bq/L가 검출됐지만, 주민 우물에서는 52~59 Bq/L 정도만 검출돼 주민에게는 큰 위해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 원전의 경우 월성 원전보다 대체로 양호한 수준이었지만 NRC에서는 대책을 수립했다.

이와 관련 한수원은 "지난해 환경 감시지점에서 지하수를 분석한 결과, 월성원전 주변 봉길 지역에서 미미한 수준인 4.8 Bq이 검출돼 방사능에 오염된 지하수가 원전 부지 바깥으로 확산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비계획적 유출이 확인된 바 없다는 주장이다.

삼중수소 누설 어떻게 알게 됐나

월성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추정도. 자료: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

월성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추정도. 자료: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

월성원전 부지 내 집수정(최대 53만 Bq/L) 이나 배수로, 지하수에서는 삼중수소가 높은 수준으로 검출되고 있다.

월성원전 부지 내에서 삼중수소가 누설된다는 사실은 지난 2018년 처음 알려졌다.

월성 2~4호기 격납 건물의 여과배기설비(CFVS)를 설치하면서 2012년에 실시한 1호기의 CFVS 시공 상황을 되짚어보게 됐고, 2012년 당시 시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관계자가 발견했다.

2012년 1호기 CFVS 시설의 지반공사 때 강관 7개를 박았는데, 그중 2개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벽체와 차수벽 사이를 뚫고 들어간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바닥에 깔린 PVC(폴리염화비닐) 차수막을 훼손됐음을 파악한 한수원 측이 2019년 6월부터 지하수 감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 결과를 담아 지난해 6월 '조치계획'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와 관련 이정윤 대표는 "PVC 차수막 아래 지하수가 오염됐다는 것은 저장조 벽체 등에 이미 문제가 있어 누출이 일어났다는 의미"라며 "콘크리트 벽체에 방수용 에폭시 라이너를 했지만, 방사선에 의해 에폭시 라이너가 부풀고 굳고 찢어져 누설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장조를 콘크리트가 아닌 스테인리스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장동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공동대표 등 구성원들이 13일 오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경주 월성원전 2·3·4호기 가동 중단과 방사능 누출과 관련해 민관합동조사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박장동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공동대표 등 구성원들이 13일 오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경주 월성원전 2·3·4호기 가동 중단과 방사능 누출과 관련해 민관합동조사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이상홍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이 보고서를 입수하게 돼 공개한 것일 뿐 검찰의 월성원전 1호기 폐쇄 관련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정확한 누설 위치를 확인해 누설을 막는 등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고,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공동조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삼중수소 얼마나 위험한가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 끝). 연합뉴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오른쪽 끝). 연합뉴스

한수원이 '2019년 환경 방사능 조사 및 평가 보고서'에서 밝힌 월성원전 관련 사항을 보면, 2019년 1년 대기로 나간 방사성 물질의 양이 116조 Bq이고, 이 중 94.35%가 삼중수소였다.
또, 냉각수 등 액체 형태로 배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31조3000억 Bq로 99.77%가 삼중수소였다.

이렇게 '계획'에 의해 배출된 방사성 물질은 공기, 빗물, 토양, 바다, 농작물과 어패류 등을 거쳐 주민들에게 도달한다.

예를 들어 2019년 7월 31일 월성원전 부근에서 채취한 빗물 시료에서는 삼중수소가 L당 74 Bq 검출됐는데, 한수원 측은 "발전소에서 배출된 삼중수소가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동풍 계열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많은 비가 내리면서 수집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2019년 1년 동안 계획 배출에 따라 노출된 방사선량은 최대 0.03895 밀리시버트(m㏜)로 추산됐다.

한수원 측은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2조 제4호의 일반인에 대한 연간 유효 선량 한도인 1 m㏜의 3.9%, 동일 부지 내 다수의 원자력 관계시설을 운영하는 경우에 적용하는 기준치인 0.25 m㏜의 15.58%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번에 문제가 된 비계획적 누출에 의한 피폭량이 추가돼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어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셈이다.

원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삼중수소 체내 반감기. 10일 정도 지나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한전 전력연구원(2009년 방사선방호학회지)

원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삼중수소 체내 반감기. 10일 정도 지나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한전 전력연구원(2009년 방사선방호학회지)

한편, 체내에 들어온 삼중수소는 다시 배출돼 10일 정도 지나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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