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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기에도 싱싱한 정채봉 시집·산문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8호 20면

첫 마음

첫 마음

첫 마음
정채봉 지음
샘터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지음
샘터

동화작가 고(故) 정채봉(1946~2001)의 20주기를 기념한 책 두 권이다. 생전 그의 네 권 산문집에서 좋은 글을 모은 『첫 마음』, 그의 유일한 시집에 산문시를 추가한 개정증보판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이다.

정채봉은 ‘성인 동화’, 그러니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 『오세암』이 프랑스에도 소개됐다. 첫 장부터 명성에 맞는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산문집. 이런 문장이 독자를 맞는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새로울 건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슬며시 풀어진다.

시집. 생전 고인과 막역했던 정호승 시인이 발문에서 “나는 정채봉 형을 단 한 번도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썼다.

‘슬픈 지도’ 같은 작품이 그런 보증수표에 걸맞지 않을까.

“사랑하는가?/ 눈물의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슬픈 지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전문이다. 사랑과 눈물을 연결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화작가 아니 시인 정채봉은 슬픔의 지도까지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온통 눈물 세상에 살 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사태에 기꺼이 빠져든다.

표제시는 애절한 마음의 끝판왕 같은 작품.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군더더기 없어 매력적인 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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