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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제2노총 발표에 발끈한 한국노총, 일리는 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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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소재 한국노총

서울 여의도 소재 한국노총

한국노총이 발끈했다. 고용노동부가 29일 발표한 '2019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두고서다. 한국노총은 이 통계를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전국 노조 조직 현황은 매년 발표되는 국가 통계다. 한국노총은 왜 이를 부정하고, 정부에 항의하는 걸까.

노조 조직 현황에 따르면 한국노총은 지난해 72년 만에 제1노총의 지위를 민주노총에 내준 뒤 회복하지 못했다. 2년째 제2노총으로 주저앉았다. 법적 사회적 대화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의 대표성에 논란이 일 수 있다. 정부와 정부 산하기관에서 위촉하는 근로자 위원 또는 비상임이사도 민주노총이 꿰찰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심의위원 등에서도 한국노총의 몫이 줄고, 민주노총이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 제2노총의 서러움이다.

한국노총 측은 "노동부 자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국가의 중요한 통계를 제대로 된 검증도 하지 않고 허술하게 작성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있어 보인다. 고용부는 노조 조직 현황을 노조가 '신고한 조합원 수'를 토대로 작성했다. 바꿔 얘기하면 부풀려서 신고해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조가 신고를 누락하면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한국노총 측은 "기업별 단위노조가 3000개가 넘는 한국노총의 경우 누락되는 조직이 많고, 데이터 또한 과거 신고기준으로 작성돼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고용부가 집계한 한국노총 산하 노조 수는 2405개에 불과하다. 한국노총이 자체 관리하는 조직 수보다 최소 700여 개 적다.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의 상당수가 산별노조로 묶여있다. 금속노조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속한 것과 같은 형식이다. 이 경우 노조는 금속노조 1개로 본다. 금속노조가 조합원 수를 취합해 신고하면 그대로 통계에 반영된다. 한국노총은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가 대다수다. 그래서 모든 노조가 일일이 신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고 누락이 많다는 게 한국노총 측의 주장이다.

조직 특성에 따른 통계 누락보다 한국노총을 더 화나게 한 건 따로 있다. 부풀려진 허수다. 한국노총 측은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는 작년 기준으로 조합원 수를 무려 14만 명 이상인 것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최근 치러진 민주노총 선거의 건설노조 선거인단 수는 신고된 수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또 "건설현장은 (노동자가) 수시로 양 노총을 넘나들고, 중복 가입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통계적 검증이나 고려가 전혀 없다"고도 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신고한 것만 가지고 통계를 내다 보니…"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주장이 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고용부는 올해 보도자료를 짤막하게 냈다. 업종별 노조원 수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자세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논란거리가 많아서 앞으로도 세세한 통계 수치는 서비스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한국노총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통계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조직 현황은 1989년부터 줄곧 지금 방식으로 작성돼 왔다. 제1노총의 지위에 있을 때 통계 작성 방식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깔끔해 보였을 수 있다. 더욱이 조합원 수를 일일이 검증하는 것도 사실상 힘들다. 자칫하면 사찰 논란을 부를 수 있어서다. "통계 폐기"를 주장하는 한국노총에 대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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