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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석열 탄핵 거론하는 여당…대통령의 사과는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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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이 사과했으니 여당도 반성하고 제정신을 차릴 것으로 대다수 국민이 기대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부추겼던 의원들은 자숙의 시간을 가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흥분해 검찰총장 탄핵을 운운하고 있다. 대통령 사과가 무색하다. 통치권 누수 현상이 집권당에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법원 공격하고 검찰총장 탄핵 주장하는 여권 #청와대는 대통령 뜻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 징계가 법원에서 취소되자 “결과적으로 국민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인사권자로서’라는 단서가 달려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줬으나 그래도 더 이상의 국가적 혼란을 막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국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법의 과잉 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 … 사법의 정치화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탄식이 들린다”며 법원을 공격했다.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처분을 한 법관이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비난이 담긴 표현이었다. 아무리 여당 대선후보가 되는 데 강성 친문 지지층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해도 최소한의 이성마저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민주당 의원들은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형을 선고받자 “이제는 사법부 개혁이다”고 외쳤다. 자기들 희망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이, 판사가 재판을 잘못한 것이라고 우기는 집권당 행태가 지극히 실망스럽다.

일부 여당 의원은 한술 더 떠 윤 총장 탄핵을 거론했다. 김두관 의원은 “남은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친박 정치인들이 한 말의 복사판이다. 황운하 의원도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윤 총장을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탄핵 주장을 말리는 여당 의원들은 윤 총장 탄핵에 합리적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고작 국회에서 탄핵안을 의결해도 헌재에서 기각될 게 뻔하다, 역풍이 우려된다고 한다. 할 수만 있으면 하겠는데 여의치 않으니 자제하자고 한다. 174석으로 힘자랑까지는 가능하지만 헌재에 내세울 탄핵 사유가 마땅치 않다는 얄팍한 계산만 있다.

민주당 대변인은 ‘윤 총장의 사과와 반성을 기다리고 있다’는 논평을 냈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에게 ‘너도 소란에 책임이 있으니 반성문을 써 오라’는 권위주의에 찌든 교사의 지시와 다를 게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사과를 퇴색시키는 이런 여당 행태를 좌시하고만 있다. 그래서 대통령 말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과 다음에는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난처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