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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뭉치기보단 고군분투···거여에 눌린 군소4당의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김종철 정의당 대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종철 정의당 대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연합뉴스

유럽식 다당제가 목표였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도는 지난 총선에서 결국 한국식 군소정당의 양산으로 귀결됐다.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에 뒤틀린 결과다.

‘비례 연합’을 거부한 정의당(6석)과 범여 플랫폼을 자처했다가 외톨이가 된 열린민주당(3석), 민주당의 곁불을 쬐며 원내에 진입한 시대전환·기본소득당(각 1석)이 그들이다. 거여의 입법 독주로 점철된 21대 국회 첫 해 이들은 서로 뭉치기보단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확보하려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소수정당의 캐스팅 보트는 ‘체크 앤 밸런스’(견제와 균형)의 중요한 요소였지만 거여가 3분의 2 의석을 채운 21대 국회에선 그런 기능을 기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탈바꿈 시도하는 정의당

지난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태국 민주화운동 국제연대 토론 간담회에서 정의당 김종철 대표와 류호정 의원(앞줄 왼쪽부터)이 태국 반정부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태국 민주화운동 국제연대 토론 간담회에서 정의당 김종철 대표와 류호정 의원(앞줄 왼쪽부터)이 태국 반정부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선거제 개편으로 15석을 기대했던 정의당에게 6석은 나락과 같은 결과였다. 선거 결과는 2021년 7월까지가 임기였던 심상정 전 대표의 조기 퇴진으로 이어졌다. 이후론 ‘민주당 2중대 탈피’를 위한 몸부림이 이어졌다. 지난 10월 취임 직후부터 “내년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말라”며 민주당과 각을 세운 김종철 대표는 이후에도 “가덕신공항은 4대강 사업과 다르지 않다”는 등 민주당 주요 정책의 절차와 내용에 맞섰다.

장혜영·류호정 80·90년대생 투톱의 색깔있는 발언과 행보도 정의당의 새로운 면모로 평가받았다.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 류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위한 다양한 접근법을 선보였다. 두 법 모두 보수 야당의 반응을 끌어냈고 민주당도 논의 자체를 외면할 순 없었다. ‘구의역 김군’ 논란을 일으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지난 24일 부적격 의견을 당론으로 정한 건 ‘데스노트의 부활’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이 쉽지 않았다. 지난 7월 류 의원을 필두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을 거부한 것은 당내 반발을 낳아 약 4만 명의 진성당원 중 9000여명이 탈당하는 홍역을 앓았다. 지난 21일 김 대표가 “정의당 재정이 좀 어렵습니다”라며 공개 후원금 모집에 나선 것도 그 후유증의 연속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10일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서 찬성 당론을 어기고 기권했다. "공수처의 중요한 독립성 근거인 비토권을 훼손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10일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서 찬성 당론을 어기고 기권했다. "공수처의 중요한 독립성 근거인 비토권을 훼손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단독 법안 발의권(10명)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당론 법안들의 처리를 꾀하다 보니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입장을 정할 때마다 산통을 겪어야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에 격론 끝에 찬성 당론을 정하고도 장혜영 의원이 기권한 게 정의당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탈당 사태는 분명 위기였지만 오히려 여성·청년층 지지가 단단해지며 팬덤이 강해지고 있다”며 “민주당 2중대 이미지를 벗어나 기반을 다져나가면 향후 도약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딜레마 빠진 열린민주

“(열린민주당이) 3석에 불과하지만, 민주당과 분리돼 다른 것을 지향하는 정당이 아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광주를 찾아 한 말이다. 열린민주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최 대표의 말대로 국회 민주당 친문 극성 지지층에 주파수를 맞췄다. 민주당보다 앞서 ‘윤석열 때리기’ 에 나섰고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선 안건조정위원회에 ‘야당 몫’으로 참여해 보수 야당의 저지선을 무력화했다. 그래서 “여당보다 더한 여당”(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말도 들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왼쪽)와 김진애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도시공간정책포럼 '언론과 부동산'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왼쪽)와 김진애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도시공간정책포럼 '언론과 부동산' 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열린민주당의 고민은 거여의 일부를 자처할수록 존립 기반이 취약해진다는 데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취임 전 열린민주당과의 통합문제에 대해 “필요성도 있고 어렵지 않다”(지난 8월)고 말했지만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 민주당 입장에선 통합의 실익이 없다는 평가다. 밖에 있어도 입법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없지만 들어왔을 때 이들의 강성 이미지는 적잖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선 “정치적인 공동행보가 지나치면 중도 이반과 보수 결집을 부추길 수 있다”(민주당 3선 의원)는 말도 나온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는 “민주당도 3석 흡수에 큰 생각은 없을 것”이라며 “위성정당 흐름에서 생겨난 변형된 군소정당이어서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지 못하면 독자적 존립기반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일 듯 말듯 시대전환·기본소득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기대 이상의 주목받은 건 이들의 핵심정책인 ‘기본 소득’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해서다. 지난 6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의 핵심 이념인 ‘실질적 자유’를 거론한 이후 기본소득이 정치권의 화두로 부상할 때마다 이들은 화자(話者)로 불려 나왔다. 민주당 내 대표적 기본소득론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목소리 등에 기대어 기본소득 실험(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실현되는 과정에서도 이들은 발언권을 얻었다.

용 의원은 기본소득론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의정활동의 거의 전부를 할애하고 있다. 지난 22일 용 의원이 ‘기본소득 공론화법’을 발의하자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본소득은 새로운 경제정책이자 복지정책”이라며 “용 의원의 법 발의를 환영하며 응원한다”고 썼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에서 낙태법 개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앞에서 낙태법 개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의원은 플랫폼 산업과 노동의 조화 등에도 관심을 보인다. 지난 16일 “변화된 사회에 알맞은 노동시간 논의에 불을 지필 때”라며 주4일제 도입을 주장했고, 지난 22일엔 정부의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에 대해 “정당한 보상 없는 정부의 영업권 제한은 위헌”이라고 맞섰다. 시대전환은 지난달 14일 자체 특강에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을 초청했다. 중도 성향의 ‘제3지대’ 규합에 힘을 보태겠다는 시도다.

그러나 자기 주도적으로 이슈를 생산하진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이 설계한 법안이 처리됐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인 정당의 태생적 한계이자 운명”이라며 “단기 이슈에 목매지 않고 국민들 관심이 큰 사안을 선택해 꾸준히 집중해야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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