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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보라, 산타마을 보인다’…이불 속 ‘원격현전’의 묘미

중앙일보

입력

핀란드 레비의 한 리조트 모습. 유튜브 캡처

핀란드 레비의 한 리조트 모습. 유튜브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A씨(28). 4년 전 방문했던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이 떠올라 유튜브에 '산타 빌리지(Santa village)'를 검색했다가 실시간 중계 영상을 접했다. 산타 마을의 전경을 24시간 비추는 게 전부지만, '실시간' 영상이라는 특성 덕에 본인도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해외 다른 도시의 생중계 영상도 찾아보게 됐다. A씨는 "이불 속에 누워서 가고 싶은 도시의 '현재'를 보며 여행 욕구를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창밖 보는 듯 생생한 현지 모습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1년간 국내에 발이 묶여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해외 도시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관심을 끌고 있다. 24일 유튜브에 '시티 라이브 카메라(city live camera)' '시티 라이브 피드(city live feed)'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세계 각국 도시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콘텐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부터 산타클로스의 '공식 거주지'로 알려진 핀란드 산타 마을, 일본 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등이 대표적이다. 영상 중계 주체는 해당 도시에 거주하는 개인, 지역 언론사·여행사 등 다양하다. 카메라가 고정된 콘텐트가 대다수지만 좌우 양옆으로 이동하거나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영상을 바꿔가며 송출하는 채널도 있다. 가끔 카메라를 의식한 현지인들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유튜브의 도시별 영상에 많게는 1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접속해 현장을 지켜본다. 실시간 채팅창이 활성화돼 있는 경우 접속자들끼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친구의 추천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 접했다는 B씨는 "녹화 후 잘 편집된 해외 영상은 많지만, 그곳의 현재 날씨, 해가 떴는지 졌는지 한국과의 시차가 와 닿는 것이 생중계 영상의 특징"이라며 "현지인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창밖을 내다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럽, 미국 등 도시에서 실시간 중계가 이뤄지는 유튜브 화면들. 유튜브 캡처

유럽, 미국 등 도시에서 실시간 중계가 이뤄지는 유튜브 화면들. 유튜브 캡처

최근 이런 콘텐트를 접해오다 직접 서울의 모습을 생중계하게 된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얼마 전부터 서울의 한강 야경을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고 있다. 김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중이 안 돼서 음악 스트리밍 영상을 찾아보다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한강 뷰를 콘텐트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면서 카메라를 틀어놓을 수 있고 거창한 장비도 필요 없더 당장 시도했다"고 말했다.

브이로그엔 "상상 여행 중" 댓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올라온 해외 여행 브이로그(Vlog)를 다시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최근 유명 유튜버들의 해외여행 브이로그에는 '여행 가고 싶어서 보러 왔다가 대리 만족하고 간다'는 내용의 댓글이 다수 달린다. 일본 삿포로 여행 브이로그 영상에 한 네티즌은 "군대 전역하고 겨울에 꼭 가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영상으로나마 상상으로 여행을 떠나본다"고 했다. 또 다른 유럽 여행 브이로그에는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서 이 영상으로 대신 여행 중"이라고 전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사는 공간의 정반대 공간, 멀리 있는 것들을 당겨서 보고 싶은 '원격현전(telepresence)' 욕구가 분명히 있다"며 "인터넷으로 신체의 한계를 초월한 원거리 대면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가진 못해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구나' 호기심과 궁금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데다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그동안 화면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자막으로 덮이는 등 극도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TV프로그램에 대한 일종의 반기 형태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교양·여행 프로그램처럼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대상을 그저 보기만 해도 위안을 얻고 힐링이 된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됐다"며 "코로나19 시기와 맞물려 해외도시 중계나 여행 브이로그가 주목받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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