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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 백신' 사과는 커녕 부작용만 늘어놓은 정권의 옹졸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사진 아스트라제네카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사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과학이다. 미신이 껴들 틈이 없다. 약제다 보니 효능·부작용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효능 00%, 부작용은 0%’로 똑 떨어진다. 지난 21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접종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경우 95%의 예방 효과를 보인다. 화이자는 임상 단계서 안면 마비(일명 구안와사) 증세가 보고된 적 있다. 피시험자 2만1720명 중 3명(0.01%)이었다.

[현장에서]

물론 장기적인 추적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부작용이 보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득이 손해를 압도할 때 선택되는 게 백신이다. 미 FDA(식품의약국)가 화이자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한 이유다.

이송되는 고령층 환자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이송되는 고령층 환자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80대 이상 환자 치명률 15% 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치명률은 나이와 비례한다. 국내 80대 이상 환자의 치명률이 15.4%(23일 0시 기준)로 가장 높다. 국내 전체 치명률(1.4%)의 11배에 달한다. 70대 치명률도 5.2%로 높은 편이다. 60%대는 1.1%, 50대 이하부터는 0.3% 밑이다. 40%대만 해도 치명률이 ‘0.08%’다.

치명률을 보면, 어느 연령대를 접종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실제 질병관리청도 노인 등을 우선 접종권장 대상자로 검토 중이다.

백신 접종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백신 접종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

백신 없는 갑갑한 겨울 보내야 

현재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승인을 마친 백신이 접종된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고위험군 환자의 사망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선 구매한 백신(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의 도입은 빨라야 내년 2~3월이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 와중 한국의 고령층은 백신 없는 갑갑한 겨울을 보내야 할게 명백해졌다.

백신은 의무접종이 아니다. 부작용이 안내된다. 스스로 미심쩍으면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맞을지 말지 선택지가 없다. 각국의 접종장면을 외신 등을 통해 지켜볼 뿐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부작용으로 '늑장백신' 방패 삼아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 중 하나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늑장 백신’ 논란이 일자 정부·여당은 백신의 부작용을 들먹인다. 부작용을 방패막이로 삼은 모양새다. 손영래 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2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며 “백신 안전성은 국민을 위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화이자 백신의 안면마비 부작용이 거론(김태년 원내대표)됐다. 18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약처·외교부 합동 백신 브리핑 땐 한술 더 떴다. 공식 브리핑자료에 해외 백신 부작용 보도를 줄줄이 붙여놨다. 전체 A4용지 21쪽짜리 자료에 부작용 사례만 2쪽을 할애했다.

국내 도입 예정 코로나19 백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도입 예정 코로나19 백신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료에는 정부가 가장 먼저 도입하는 아스트라제테카 백신(1000만명분)도 담겼다. 부작용은 ‘횡단성 척수염’, 하반신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다. 하지만 이 제품부터 접종이 이뤄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정부가 물량을 확보했다는 화이자(1000만명분)·모더나(1000만명분)·얀센(400만명분) 백신은 아직 계약조차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리핑장에 들어서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브리핑장에 들어서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백신 포비아 올 수도 

부작용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지난 9월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때처럼 ‘백신 포비아(공포증)’가 퍼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불안감은 접종률을 떨어뜨린다. 방역에 큰 손해다. 예산도 낭비된다.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악수(惡手)’라는 평가(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나오는 이유다.

‘늑장 백신’ 논란에 대한 명쾌한 설명, 사과를 구하면 될 일이다. 부작용 강조는 당장 백신 보관부터 배송·유통·접종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요즘 시기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뉴스1

문재인 대통령. 뉴스1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가 잇따르자 문재인 대통령이 진화에 나선 적 있다. “과도한 불안감으로 적기 접종을 놓침으로써 자칫 치명률이 상당한 독감에 걸리는 더 큰 위험을 초래하지 않기를 바란다”(10월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코로나19 백신 불안감이 팽배해진 뒤 또다시 이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위기관리 소통이 필요하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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