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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세계 경제 전망

일본·독일 같은 강대국도 중국의 압박이 버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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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중국 시장 의존도의 함정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중국에 맞서면 세계 어느 나라든 즉각 탄압을 받을 수 있다’. 호주의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지적한 중국의 강압적 패권 양상이다. 이 연구소 리처드 맥그리거 수석 연구원은 “자유주의 국가 간 협력이 없으면 중국의 압박은 갈수록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이 고민에 빠져 있다. 그간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중국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패권 확장이 본격화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경제 보복과 외교 압박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 경제력 앞세워 거침 없이 압박 #미국 동맹 중 약한 곳부터 몰아붙여 #중국 시장 철수 못하니 대응 어려워 #호주는 자유 가치 지키려 극한 대립

호주는 가장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라다. 남중국해 분쟁부터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주도권 갈등과 코로나19 책임 공방까지 중국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호주의 아킬레스건을 건들고 있다. 호주산 보리·와인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쇠고기·석탄 수입을 제한하거나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맥그리거는 “우리가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을 때까지 중국의 보복이 계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이 해외 언론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해외 언론의 표현 자유까지도 통제하려는 의도를 보인다는 우려가 미국과 유럽 언론에 쏟아지고 있다.

호주의 이런 처지는 그야말로 남의 일이 아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주로 미국의 중소 동맹국을 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력이 취약한 중남미·아프리카 국가는 지리적으로 멀고 중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인도는 덩치가 크니까 중국이 가벼이 보지 않는다. 국경 분쟁이 터져도 병력을 내보내 육탄전을 벌이는 게 고작이다. 인도는 중국 앱 사용을 중단하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대표적 국가가 바로 호주·한국·독일·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위력 앞에 일본 실리적 대응

중국은 언제나 약한 곳을 친다. 호주는 미국·영국·캐나다·뉴질랜드와 함께 안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동맹국이다. 홍콩 사태와 관련해 이들 5개국이 중국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하자 중국은 호주를 집중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30%에 달해 2500만 인구의 일자리 12개 중 한 개가 중국과 관련된 일자리다.

FT는 미국이 어수선한 정권 교체기를 맞이하면서 중국의 이같은 ‘전랑(戰狼, wolf warrior) 외교’는 더욱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랑 외교는 2015년 중국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애국주의 액션 히어로 영화 ‘전랑’ 시리즈에서 명칭을 따왔다. 지금은 자국의 이익 수호를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대립을 불사하는 압박 외교의 상징이 되고 있다.

5개국 GDP 추이

5개국 GDP 추이

이 같은 현실에서 호주·한국·독일·일본은 저마다 놓여 있는 처지가 조금씩 다르다. 이런 차이에도 분명한 교훈이 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으면 중국이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중국을 대할 때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먼저 눈여겨볼 국가는 일본이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사실 가장 당혹스러운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버블경제가 정점에 달했던 30년 전만 해도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2010년 일본의 경제 규모를 앞지른 뒤 지금은 일본의 세 배에 달하고 있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일본의 대응은 매우 실용적이다. 아베 신조 총리조차 재임 8년간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중국도 일본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한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이슈화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경제 규모로 보면 중국이 일본을 압도하지만, 일본의 첨단기술과 자위대의 군사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국빈 방문을 추진할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왔다. 2018년 본격화한 협력적 양자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과정이다. 이런 관계가 가능한 것은 한마디로 일본의 국력이다. 기술력이나 군사력으로 볼 때 중국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독일도 중국 의존도 줄이기 안간힘

독일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간 서구 선진국이 무역과 투자를 통해 중국의 행동을 민주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믿음을 가졌던 메르켈 총리조차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일 기업들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대체 시장을 찾으라고 촉구하고 나서면서다. 15년 전 메르켈이 총리에 취임했던 당시 독일은 중국보다 경제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중국의 4분의 1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독일도 경제 규모가 성장했지만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격차가 급격해졌다.

독일 자동차산업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폴크스바겐은 중국에서 공장을 비롯해 사업장 26개를 운영 중이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권 탄압이 극심한 신장 위구르에도 공장이 있다.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매사 조심한다. 지난해 베를린 주재 중국대사는 아예 대놓고 “화웨이와 관련해 독일이 미국 편을 들면, 중국 내 독일 비즈니스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8% 수준에 그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30%가 넘는 호주나 25%에 달하는 한국보다는 중국 경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독일은 이런 기본 관계를 토대로 독일의 장점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중국이 2021년부터 기술 자립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하자 독일은 세계 최강의 기계 장치 분야의 첨단기술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중국이 경제력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서자 첨단 기술력을 강화해 중국의 위력 확대를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없으니 초격차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접근이다.

기업이 기를 펴야 기술 우위 확보하고 시장 다변화도 가능

중국은 경제 패권 ‘굴기(堀起)’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반도체를 정점으로 핵심 제조업 기술에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향해서다. 한국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는 일본·호주·독일이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유일한 버팀목은 경제력이고 여기에 더해 약간의 유연성이다. 지금은 분쟁이 생겨도 전쟁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경제력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일본과 독일이 기술력을 지키면서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려는 이유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을 무기로 한국·호주보다는 수출 대상이 다변화된 덕분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그르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자존심 높은 독일이나 일본도 중국과의 관계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독일은 중국에서 계속 차를 팔 수 있고, 일본 역시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최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안정적인 양자 관계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센카쿠를 둘러싸고 서로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일본은 오히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에 적극 참여했다. 중국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하기 전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P) 참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해지고 있다. 유연성과 실용주의를 발휘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한국이 중국 굴기의 후폭풍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 기(氣)를 펴야 한다. 밖으로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기치를 든 ‘민주주의 동맹외교’도 중요하다. FT는 “중국의 각개격파식 주요국 길들이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국가들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경제나 외교나 다자주의의 틀에서 국익을 최대화해 나가야 한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