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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먹고 이야기하라, 아주 특별한 ‘해녀의 부엌’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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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해녀의 부엌’ 공연에서 김하원 대표(왼쪽)와 강인화 할머니.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 공연에서 김하원 대표(왼쪽)와 강인화 할머니. [사진 해녀의 부엌]

“엄마가 너 물질 나갈 때 늘 했던 말 기억하느냐”

한예종 출신 김하원 대표 #“해산물 값 떨어져 해녀들 고생 #극장식 레스토랑 열어 판로 해결 #해녀들과 관객 인터뷰식 대화도”

“물 속에 드러가믈 숨 이실 때 나오랜 한 말을 기억허우다.” (물 속에 들어가면 숨 있을 때 나와야 한다고 한 말을 기억해요.)

“아직까지 물질 하느냐”

“바당가고푸난감수께.” (바다가 가고 싶어서 가고 있어요.)

어머니의 물음에 무대 앞으로 나온 해녀 권영희씨가 제주 사투리로 답한다. 20대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키워야 했던 해녀와 그 어머니를 따라 10살 때부터 해녀의 삶을 이어간 권씨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이다. 권씨는 89세, 제주 종달리 최고령 해녀다. 무대 위 어머니는 20대, 딸은 80대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권씨가 마치 실제 어머니를 만난 듯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일부 관객들은 눈시울을 닦기 시작했다. “요즘 어린 해녀들은 너무 편해. 고무로 된 해녀복도 입고, 남편이 차로 데려다주고…”라는 대목에선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11일 제주 구좌읍 종달리 ‘해녀의 부엌’ 공연 중 일부다.

‘해녀의 부엌’은 2019년 1월부터 운영되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다. 총 진행시간은 2시간 30분. 해녀의 삶을 다룬 30분가량의 단막극이 끝나면 현지에서 잡아올린 뿔소라, 군소, 전복 등 해산물 이야기에 이어 이를 요리한 식사가 제공된다. 이어 관객과 해녀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극장 겸 공연장은 종달리 어촌계 창고를 활용했다.

공연 제작자는 김하원(29) ‘해녀의 부엌’ 대표.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 출신인 김씨는 이곳 종달리에서 나고 자랐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마음을 바꿔 이곳에 눌러앉았다.

어떻게 공연을 하게 됐나.
“방학 때 고향에 왔다가 해산물 가격이 급락해 해녀들이 힘들다는 얘길 들었다. 뿔소라가 1kg에 2700원 정도라고 했다. 20년 전과 같은 가격이다. 할머니, 고모, 큰어머니 등이 해녀다. 너무 속상했다. 어떻게 상황을 개선할까 고민하다 착안했다.”
공연·식사·관객과의 인터뷰라는 구성이 독특하다.
“해산물을 판매할 지속적인 모델이 필요했다. 특히 해녀 수입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뿔소라 시장을 창출하고 싶었다. 뿔소라는 1년에 2000t가량이 생산되는데 80% 가까이 일본에 팔린다. 고민 끝에 내놓은 게 이 공연이다.”
함께 공연을 만드는 이들은.
“해녀 7명과 스태프 9명이다. 권영희 할머니 외 해녀들은 70대다.”

김 대표는 “2018년 5월 이전에 예술교육을 하며 만난 해녀들에게 ‘이모, 우리 공연 한 번 만들어보자’ 설득했다”며 “자신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움츠러드는 해녀들을 치유하고 ‘영웅’으로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내 인생이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 내가 잘살아온 거네’라면서 오열했다. 지금은 무대에 오르고 관객을 만나는 걸 좋아하신다.”

해녀들 수익엔 도움이 됐나.
“제주도의 관심으로 뿔소라 kg당 5000원의 최저가보장제도 만들어졌다. 우리는 30% 더 얹어주고 공연 재료를 구매한다. 또 지난해 해녀분들에게 인건비로 약 1억원을 지급했다. 100%는 아니어도 도움이 됐다고 자부한다.”
코로나 19로 타격은 없었나.
“올해 5개월 정도 운영을 중단했고, 쉬는 동안 공연을 재정비했다. 식탁엔 칸막이를 치고 뷔페식 식사도 우리가 직접 서비스하는 식으로 바꿨다. 공연당 정원도 30명으로 줄였다. 매주 금·토·일오후 12시, 5시 30분에 열리는데, 다행히 거의 만석이다.”
다음 목표는.
“제주공항 근처에 2호점을 준비 중이다. 지금 공연보다는 간소화한 콘텐트를 만들고 싶다.”  

제주=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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