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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에 1조원…트럼프가 압박했던 미국산 그 무기 결국 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4월 시호크(MH-60R) 헬기가 북대서양 해역에서 작전 중인 미국 구축함 그리블리(DDG 107)에서 출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시호크(MH-60R) 헬기가 북대서양 해역에서 작전 중인 미국 구축함 그리블리(DDG 107)에서 출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위사업청은 15일 오후 제13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개최하고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 기종을 결정했다. 미국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하는 ‘시호크’(MH-60R) 12대를 구매하기로 확정했다.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은 2010년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 공격에 침몰한 천안함 피격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북한의 잠수함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바다를 수색할 ‘잠수함 킬러’를 배치하기 위해서다.

이번 기종 선정에는 지난 2013년 1차 사업 당시 후보 기종이 다시 맞붙어 치열하게 경쟁했다. 당시엔 이탈리아ㆍ영국의 합작 방산기업 레오나르도 헬리콥터의 기종인 ‘와일드캣’(AW-159)이 선정돼 8대를 한국 해군에 인도했는데 이번엔 고배를 마셨다.

2010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고 백령도 인근 해역에 침몰한 천안함을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고 백령도 인근 해역에 침몰한 천안함을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시호크 12대를 도입기로 한 이번 결정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미국산 군사장비를 대량 구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전격 공개했다.

정상회담에 한 달 앞선 3월 방추위는 해상작전헬기 2차 사업 추진을 결정했고 시호크, 와일드캣, 유럽 NH인더스트리의 ‘시라이온’(NH-90)이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한 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9월 문 대통령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또다시 ‘무기 구매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이때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액수와 무기 종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향후 3년간 미국산 무기구매 계획을 밝혔고 이후 시호크 도입 가능성이 점쳐졌다.

박원곤 한동대학교 교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를 만났을 때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 의향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바이든 차기 정부도 미국산 구매를 원하고 있어 (이번 시호크 기종 선정이) 향후 한·미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환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환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시호크는 길이 19.7m, 높이 5.1m, 동체 폭 3.3m로, 최대 비행속도는 시속 267㎞, 항속거리는 930㎞ 수준이다. 한 번 이륙하면 4시간 정도 비행한다. 음파탐지장치(디핑소나 , 소노부이)로 적 잠수함을 탐색하며 어뢰와 공대함유도탄 등으로 공격할 수 있다.

시호크는 기체가 크고 체공시간ㆍ항속거리ㆍ무장량 등에서 경쟁 기종에 앞선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비싼 기체 비용이 걸림돌로 여겨졌다. 1차 사업 경쟁에서 밀려난 이유도 가격경쟁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최근 시호크 주문이 계속 이어져 생산 규모가 늘면서 가격이 내려갔다. 지난 5월 인도에서 24대 구매를 확정했고, 대만도 10대 구매를 진행하고 있다. 방추위는 “연내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총 사업비는 약 9600억 원”이라고 밝혔다.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이 해군 잠수함과 해상 작전을 펼치고 있다. [해군 제공]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이 해군 잠수함과 해상 작전을 펼치고 있다. [해군 제공]

이날 선정된 시호크는 2025년에야 국내에 도착한다. 방사청은 2013년 1차 사업에서 5890억 원을 투입해 와일드캣 8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뒤 2017년 전력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시작한 2차 사업은 지난 7년 동안 사업 추진 방식과 기종 선정을 두고 갈팡질팡하며 지연됐다.

당초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수리온 헬기를 개조하는 국내 개발도 유력하게 검토했지만, 국내 개발과 해외 도입 방안을 두고 고민만 거듭했다. 국내 개발은 실패 가능성이 높고 개발 기간도 길어진다는 보고서를 받아들고 5년 만에 해외 도입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방사청은 2018년 6월 입찰 공고를 냈으나 10월과 11월 두 차례 모두 와일드캣만 단독 입찰해 유찰됐다. 2회 유찰되면 수의계약을 허용한다는 방위사업법에 따라 2차 사업 기종도 1차 사업을 따냈던 와일드캣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유찰된 날 미국 정부가 시호크도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뒤늦게 알려오면서 원점 재검토가 이뤄졌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경쟁 기종 선정 절차는 21개월 만에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대구공군기지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 행사장에 영공수호비행을 마친 F-15K 편대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0월 대구공군기지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 행사장에 영공수호비행을 마친 F-15K 편대가 행사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시호크 외에 미국 몫으로 돌아간 사업은 또 있다. 이날 방추위는 한국군 주력 전투기인 F-15K의 전파교란 회피(항재밍) 능력을 갖춘 위성위치확인체계(GPS)와 피아식별장비(IFF), 전술데이터링크(Link-16) 성능 개량사업도 미국 보잉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연내 계약 예정이며 오는 2026년까지 3000억 원을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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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회의는 중형 기동 헬기 전력의 중장기 발전 방향도 논의한 뒤 “블랙호크(UH-60) 기본 헬기는 수명주기 도래 시 추후 차세대 기동헬기로 전환하고, UH-60 특수작전 헬기는 별도 성능 개량, 수리온 헬기는 양산 완료 후 성능 개량을 추진하는 것으로 각각 심의 의결했다”고 전했다.

육군의 대형 기동헬기 ‘치누크’(CH-47) 성능 개량 사업은 중단하기로 했다. 방사청은 “일정, 성능,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방추위 회의에서는 치누크 성능개량 사업을 중단하기로 심의 의결했다”며 “향후 군과 협의해 전력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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