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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소련이 딱 이랬다, 법을 권력의 무기로 쓰는 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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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서 실현된다.” 지난 8월 3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한 말이다. 민주당의 신정훈 의원은 “‘자유민주주의가 법의 지배로 이루어진다’는 그 과감한 발상이 매우 충격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나 위험하게 들린다.”

그들에게 ‘법’은 사적 이해와 이념을 실현하는 당파적 도구 #윤석열이 아무 죄가 없어도 그들의 법정에서는 이미 유죄 #반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그들의 법정에서는 무죄 #그들의 ‘혁명적 법 양심’은 김경수도, 한명숙도 무죄로 본다 #이것이 우리의 사법을 초월한 그들만의 법관념이고 사법이다

법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국회의원께서 교양이 부족해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를 혼동한 것이다. 법치주의 이념을 “충격”과 “위험”으로 간주하는 그의 발언에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 말에서 ‘일반인’을 ‘권력’으로 바꾸면 지금 벌어지는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다. ‘권력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와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나 위험하게 들린다.’

‘법의 지배’를 “충격”과 “위험”으로 여기는 것은 그만이 아니라 이 정권 자체의 경향이다. ‘법의 지배’란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합의. 영국에서는 왕도 헌법 아래 있다. 그런데 공화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법 위에 서 있으려 한다. 그래서 법의 지배를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다.

법 위에 선 자들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하기 마련이다. 자신들은 법의 예외로 만들어 놓고 법을 자의적 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최강욱 의원은 윤 총장을 겨냥해 퇴직 검사의 출마를 1년간 금지하는 법을 발의했다. 추미애 장관 역시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비밀번호 해제법’을 제안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법치의 파괴에 앞장선 민주당 의원들의 다수가 하필 법조계 출신이라는 사실. 율사라면서 정작 ‘법적 마인드’(legal mind)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에게 ‘법’은 상이한 이해와 이념들에 중립적인 규칙이 아니다. 그들은 ‘법’을 사적 이해와 이념을 실현하는 당파적 도구로 간주한다. 대체 왜들 그럴까?

죄형법정주의의 파괴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예를 들어 이재정 의원의 SNS 글을 보자. 그는 윤석열 총장을 “침묵하는 방식으로 이미 출마 선언을 한 부작위범”으로 규정하며 이렇게 말한다. “형법상 범죄는 적극적인 행위로 할 수 있지만 소극적인 행위로도 할 수 있다. (…) 부작위범은 작위 의무를 일부러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범죄의 결과를 발생시키는 형태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피선거권을 보장하며, 공직자에게 퇴임 후 계획을 공표할 의무를 규정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무 말 안 하는 것이 “형법상 범죄”를 구성한단다. 집사 7년 차라 고양이 소리는 꽤 알아듣는데 개는 안 길러봐서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 놀라운 것은 지지자들은 이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더 황당하다. “병든 검찰을 살리기 위한 일체의 행위를 방기하고 정치 소용돌이 안으로 던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윤석열은 정치를 하는 것이고, 이는 엄연히 검찰살인죄이다.” 형법에 ‘검찰살인죄’도 있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이런 논리라면 민주당은 ‘의회살인죄’, 대통령은 ‘국가살인죄’로 다스려야 할 게다.

무려 변호사, 그것도 ‘민변’ 출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식으로 법을 엿가락처럼 늘려 없는 죄를 창조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당 쪽 율사들이 매우 독특한 법관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혁명적 법 양심’

확실한 것은 이들의 법관념이 1920년대 소련의 그것을 빼닮았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법률을 폐지했으나 사회주의 형법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과도기. 그 시기에 소련의 판사들은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행위에까지 유죄를 선고하곤 했다. 그때 준거로 사용된 것이 노동자·농민 국가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판사들의 ‘혁명적 법 양심’이었다.

‘혁명적 법 양심’으로 마구 유추에 의한 판결을 남발하는 법정이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것은 빤한 일. 아무 말 안 한 것을 ‘부작위’ 출마선언으로 간주해 ‘살인죄’까지 적용하는 이재정 의원은 이 혁명 법정의 판사들을 연상시킨다. 멘탈리티는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대의의 이름이 ‘혁명’에서 ‘개혁’으로 바뀐 것뿐.

아마 과거 운동권 습속의 흔적일 게다. 실제로 민주당 사람들은 현재의 정세를 10월 혁명 직후와 비슷한 내전상황으로 표상한다. 한편에는 민주당이 이끄는 개혁세력이, 반대편에는 검찰을 중심으로 한 적폐세력이 있다. 전장의 정의는 승리에 있다. 법은 이 결전의 승리를 위한 무기로 활용돼야 한다. 이게 그들의 법관념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두 종류의 사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정화 검사는 ‘법리’ 검토 결과 이른바 사찰문건이 죄가 안 된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그 보고를 삭제했다. ‘혁명적 법 양심’에 따라 개혁의 대의가 법리를 초월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추·윤 갈등’의 본질도 실은 이질적인 이 두 법관념의 충돌에 있다.

삼류들의 쿠데타

이 충돌에서 추미애 사단은 5전 5패를 했다. 99%의 검사들이 항의 성명을 냈고, 전국의 법학교수들이 그 뒤를 따랐다. 법원에선 직무배제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감찰위는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으며, 전국 법관회의는 판사 문건에 관한 안건들을 부결시켰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념으로 법리를 누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추미애 사단의 한심한 자질도 완패의 요인 중의 하나일 게다. 장관 자체가 법리에 어둡기로 유명하다. 법리를 무시하라는 장관의 지시에 따를 사람은 오직 부족한 능력을 넘치는 충성으로 때워야 하는 출세주의자들뿐. 이 삼류들이 권력의 힘을 업고 일류를 음해하려다가 외려 자기들이 수사를 받을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김남국 의원은 민주당 율사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찰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감찰을 해봐야 안다.” 이런 논리라면 조국은 진즉에 구속됐어야 한다. 구속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일단 구속을 해봐야 알 게 아닌가. 이런 궤변에 따라 감찰이 이루어졌고, 법리상 죄가 안 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징계위의 정한중 위원장은 자신도 “법조인 출신”이라며 “공정한 심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농담이 과하시다. 그럴 사람이면 애초에 추미애 장관이 그 자리에 앉혔겠는가. 징계위는 시작도 전에 이미 판결이 내려진 캥거루 법정일 뿐이다. 진짜 징계위는 과천 법무부 청사가 아니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이미 열렸을 것이다.

법 위에 선 대통령

거대한 범죄 뒤에는 늘 위대한 대의가 있었다. 민변 출신의 최강욱 의원은 한동훈 검사장을 잡기 위해 녹취록을 변조했고, 추미애 사단의 신성식 부장은 KBS에 허위사실을 제보한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이 그 짓을 하는 것은, 개혁의 대의가 그 범죄를 정당화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리라. 무서운 것은 그들의 이 신념이다.

민주당에서는 월성 원전의 폐쇄를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정당화한다. 대통령에게는 초법적 권한이 있다. 고로 그의 뜻을 받들어 평가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한 이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혁명적 법 양심’에 따라 법을 위반한 자들이 아니라 외려 그들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단죄하기로 한 것이다.

이 나라에는 이질적인 두 개의 사법이 존재한다. 윤석열과 한동훈도 아무 죄가 없어도 그들의 법정에서는 이미 유죄다. 반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그들의 법정에서는 무죄가 된다. 그들의 ‘혁명적 법 양심’은 김경수도 무죄, 한명숙도 무죄, 곽노현도 무죄로 본다. 이것이 우리의 사법을 초월한 그들만의 사법이다.

그들의 사법은 법정 밖의 성난 지지자 대중을 만나 이제 ‘인민법정’이 된다. 종교인들과 어용단체, 민주동호회에서 일제히 총장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저항의 수단이 탄압의 무기로 전락한 것이다. 이 분위기는 명백히 전체주의적이다. 이는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위협받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다.

법조인 출신들이 법치의 파괴에 앞장선다. 그 선두에 대통령이 서 있다는 것은 심히 민망한 일이다. 징계위가 열린 날 대통령은 검찰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속히 징계를 해치우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인권변호사께서 가면 뒤로 냉혹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셨다. 많이 급하셨나 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