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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승] 블록체인이 다음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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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출처: 셔터스톡]

[이대승’s 블록체인 헬스케어] 2016년 7월의 어느 날. 영국에 있는 한 중년 여성의 전화가 울립니다. 남편에게서 온 전화입니다. “작별인사를 해야 해. 남은 시간이 없어. 몇 분 안에 우리 딸은 곧 죽을 거야. 뭐라도 말해. 당장. 우리 딸은 들을 수 있을 거야.” 

#나타샤 법은 왜 제정됐을까

꿈 많은 15세 소녀 나타샤는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산 샌드위치를 들고, 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니스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심한 참깨 알레르기가 있었던 나타샤를 위해 아버지는 항상 알레르기를 중화시킬 수 있는 약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나타샤는 곧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가 응급 처치를 했지만,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와 함께 결국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영국에서는 ‘나타샤 법’이 제정됩니다. 영국 내 알레르기를 가진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성분을 전부 표기하는 법이었죠. 

하지만, 단순히 들어간 성분을 적어 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은 극미량으로도 심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극단적인 예로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땅콩 잼을 먹고 온 사람이 옆에 있기만 했는데도 쇼크를 일으킨 사례도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조리 과정이나 운송 중에 다른 성분과 섞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내문은 점점 복잡해 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알레르기 유발이 가능한 성분에 대한 안내문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이 제품은 알레르기 발생 가능성이 있는 OO을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 시설에서 만들고 있다'는 식의 주의사항이죠. 

https://lh5.googleusercontent.com/kpsi8IHwPQXLS4yadBz5D2I-CgfajY7_uGBEB4b5-BM4DJczQjZjaM_MqzhISnxt4KoxUiDFfunx87U2EeSHGzp6s3QVKKoFPoDYP7XVc0Yfwpu7__BQkEiwK5GxxdFlyOA7mqrH

이미지 출처: http://m.dailypharm.com/News/257577

#블록체인이 식품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자세한 안내문은 문제를 피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최고의 과학잡지인 네이처에선 영국에서 제정된 ‘나타샤 법’에 관련한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실제로 들어있는 성분이 아닌, 들어있을 수도 있는 모든 성분들을 나열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공간에 ‘있을 수도 있는’ 내용들을 모두 집어넣게 되면 소비자는 실제로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를 파악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그냥 이 깨알같은 글씨들은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표적인 기술로 블록체인을 제시합니다. 영국에서는 2018년 부터 1년간 소고기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에 대한 기초 연구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연구가 완료된 후에는 돼지고기로 확장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심한 알러지가 있는 이들은 식품이 만들어질 때까지의 모든 공급망을 통해 알러지를 유발할 수 있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정보만을 쉽게 얻도록 안내문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최근진행된연구에서는 하이퍼레저 패브릭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음식의 알러지 성분들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FOODALERT)이 언급됐습니다. 스마트폰 등과 연계된 시스템으로 쉽게 정보를 등록하여 정부기관·회사·소비자들이 각기 다른 권한을 가지고 필요한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해당 시스템에 대해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보안성이 높으면서도 투명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팀 측은 “추적이 가능한 투명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이점은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음식을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증표인 HACCP 인증은 이제 단순히 따라야만 하는 기준이 아니라, 이러한 높은 기준도 충족하는 안전한 상품이라는 홍보의 기능까지 하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공급망 탐색 시스템을 사용해 원료까지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되면, 나타샤에게 닥쳤던 비극이 다른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대승 안과 전문의, 한양대 IAB 자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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