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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병원 통째 내놓은 의사, 환자·간호사도 흔쾌히 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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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9일 허리 협착증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맹연숙(64)씨. 김민욱 기자

지난 9일 허리 협착증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맹연숙(64)씨. 김민욱 기자

“내일(15일)부터 일반 진료 환자를 받지 못합니다.”

병원 전체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 #병상 비워야 하지만 큰 불만 없어 #의료진 “코로나 환자 치료는 사명” #직원들 “누군가는 어차피 해야할 일”

14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평택시 박애의료재단 박애병원. 1층 원무과 직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나 병원을 옮겨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보호자들의 빗발치는 문의에 응대하는 중이었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병실을 내준 조길자(69)씨는 “좋은 일 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욱 기자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병실을 내준 조길자(69)씨는 “좋은 일 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욱 기자

박애병원은 이틀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을 자처했다. 민간 종합병원 중 처음이다.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기면서 병상 부족이 현실로 나타나자 병원을 통째로 코로나19 중증 환자 병원으로 내놨다. 경기도 중증 환자 전담 치료병상은 13일 기준 0개다.

박애병원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현재 입원 중인 100여 명의 환자를 15일까지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퇴원시켜야 한다. 환자를 받아줄 데를 수소문해 일일이 동의를 구했다.

박애병원은 16일 시설 개선 공사에 들어간다. 30일까지 병실을 개조해 코로나19 치료병상을 80개(중환자용 병상 15개 포함)가량 만든다. 이를 통해 중증 환자, 투석이 필요한 신장 장애 코로나19 환자,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가 어려운 중등도 환자 등을 돌보게 된다.

김선희 지원본부장(왼쪽)과 권미정 수간호사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김선희 지원본부장(왼쪽)과 권미정 수간호사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감염병 환자 특성에 맞게 병실을 개조하는 게 만만치 않다. 공사비만 4억~5억원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장비도 채워야 한다. 바이러스가 병실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돕는 간이음압기와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 등이 필요하다. 오대훈 원무부장은 “평택시 등과 지원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며 “간호인력도 2배가량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애병원 직원 220명 중 의료인력이 150명가량 된다.

박애병원의 코로나19 전담병원 전환은 순식간에 결정이 났다.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을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 직원들은 지난 12일 전담병원 지정 후에야 알았다. 김병근 박애병원 원장이 단체채팅방에 관련 소식을 올리면서다. 이후 환자들에게 “병실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환자들이 불만을 토로할 법한 상황이지만 대부분 흔쾌히 받아들인다. 충남 천안에 사는 맹연숙(64)씨는 지난 9일 허리 협착증 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했다. 맹씨는 “코로나 환자 치료를 위해 병실을 비워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황했다”면서도 “환자가 많이 발생해 (전원 요구를)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이다. 서로서로 도와야 코로나가 사라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두 달 가까이 입원 중인 조길자(69)씨도 “불안은 하지만 (박애병원이) 좋은 일을 하는 데 다 협조해야 한다”며 “(그래야) 빨리빨리 좋은 날이 올 것 아니냐”고 했다. 이날 오후 4시 현재 30%의 환자가 전원하거나 퇴원했다.

마스크 너머 직원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날 의료진은 다른 병원에 가서 코로나19 환자 치료 기술을 배우고 왔다. 경력 20년의 이혜영 간호팀장은 “병상이 없어 환자가 경기도에서 수백㎞ 떨어진 목포까지 이송됐다고 한다. 거점 전담병원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며 “오히려 주위에서 걱정들을 많이 해줘서 위안이 된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는) 간호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미정 수간호사도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만, 전시와 같은 코로나19 상황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엄마 멋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김선희 지원본부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평택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주요 피해 지역이었고 힘들게 극복했다. 이번에도 평택이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평택=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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