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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도 해시태그로 티낸다, 젊은 꼰대들 기막힌 'SNS 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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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거리를 지나는 직장인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서울 여의도 거리를 지나는 직장인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대기업 부장인 A는 올해 입사 2년 차인 B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A는 이를테면 부서의 총무. 업무 외에 부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그에게 주어진 책무다. 문제는 B가 막내가 맡아오던 일을 전혀 하지 않겠다고 건건이 대들면서 생겼다. 거래처 연락처 파일 정리를 안 하는 건 기본. 회의 문서를 발표용 PPT로 만드는 일이나, 주간업무 보고용 밑 자료 준비 등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직급을 떠나, 같은 회사 구성원이기 때문에 직급이 낮다고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기업딥톡 46] '갑질'도 요즘 젊은 꼰대는 SNS로

하지만, A는 최근 신입사원인 C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막내의 권리를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B가 사실은 신입사원들 사이에선 엄청난 ‘꼰대’로 통한다는 것. C가 자리를 5분만 비워도 "어디 가는 거냐. 임의로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건 물론, 수시로 ‘막내가 할 일’이라며 업무를 떠넘겼다. 여기에 “내가 막내일 때는…”이라며 폭풍 잔소리를 하곤 해 C는 스트레스로 불면증까지 겪었다고 한다.

A는 결국 B를 회사 내 다른 부서로 ‘모양 좋게’ 내보내는 식으로 문제를 정리했다. A는 13일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까진 참으려 했지만, 정작 자기보다 후배인 신입사원에게는 선배의 권리 운운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참을 수 없었다”며 “그나마 신설 부서가 생겨서 자연스럽게 이동을 시켰기 망정이지 한 달 만 더 같이 있었다면 서로 갈등이 폭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철, 직장인들 사이에서 ‘젊은 꼰대’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젊은 꼰대는 상사를 ‘꼰대’라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은 후배에게 권위적으로 구는 20~30대를 의미한다. 일부에선 ”젊은 꼰대가 기성세대보다 더 권위적“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사실 젊은 꼰대는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다. 구인ㆍ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 979명을 대상으로 ‘회사 내 젊은 꼰대 유무’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후배는 물론 거래처에도 갑질

젊은 꼰대들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꼰대들은 주로 사무실이나 회식 장소 등에서 직접 대면을 통해 ‘잔소리와 훈계’를 퍼부었다면 젊은 꼰대들은 메신저와 소셜미디어(SNS)로 무장하고 24시간 ‘꼰대 짓’을 멈추지 않는다.

후배에게 반말은 기본. ”제가 나이도 많고 직급도 위니까 지금부터 설명할 때는 말을 좀 낮출게요“라는 식이다. 대형 유통업체 차장급 직원인 이모 씨는 “부서에 젊은 꼰대 한 사람이 50대 거래처 사장님에게 반말 조로 갑질을 해 그가 없는 자리에서 대신 사과했었다”며 “술자리에서도 갓 대리가 된 친구가 ‘나 입사했을 땐 3차까지 무조건 따라갔다’고 훈계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자연스레 간식 심부름 등을 시키기도 한다. 누군가 감기에 걸린 경우를 예로 들면, 과거의 꼰대는 자리에 앉아 기침 소리를 내는 식이었다. 반면 요즘의 젊은 꼰대는 인스타그램 등에 태그로 ‘#감기 #열일 #센스○○이’ 등의 태그를 달아놓는다. 이러면 갑자기 태그로 소환된 ○○이는 “선배님 언능 감기 쾌차하세요” 등의 답을 하고 음료 등을 사다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심지어 회식 때 “선배가 타고 갈 택시를 회식 끝날 시간에 맞춰 앱으로 미리 부르지 않았다”고 질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젊은 꼰대’ 업무에도 악영향  

문제는 젊은 꼰대의 존재가 업무 성과에까지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업무를 지시하면 "왜 좀 더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세요?"라고 따지듯 물어보고, 한참 설명해주면 "아 그렇기는 한데 제 생각이 맞는 거 같아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정너' 스타일로 구는 경우가 많아 상사들도 머리를 아파한다.

2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최근 입사 2년 선배가 따로 불러 업무에 대한 지적을 심하게 하더라”며 “팀장이 지시한 내용대로 하고 있는데, 본인이 볼 때 아니라고 지적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결국 선배의 지적대로 일했다가 이를 다시 원안대로 뜯어고쳤다고 한다. 대기업 부장인 문 모 씨는 “성별을 떠나 요즘 젊은 꼰대들은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일단 눈물부터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일을 가르치려면 따끔하게 얘기를 해야 하는데, 이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비화할 수 있어 언젠가부터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란 기분으로 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과 관련 5대 그룹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은 “젊은 꼰대들이 휴가나 반차를 칼처럼 챙기는 건 나무랄 수는 없지만, 자기 맡은 업무 중 중요한 일이 있어도 나 몰라란 식으로 휴가를 가는 경우도 잦다”고 답답해했다. 이 임원은 “회사가 젊은 세대에 맞춰주려 노력하고 선배들도 그렇게 변하려 하는데, 정작 요즘 젊은 꼰대들은 아예 회사를 동아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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