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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동지였던 염태영·이재명 적 됐다···100만 특례시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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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는 ‘특례시’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1일 기준 수원·용인·고양·창원 등이 대상이다. 특례시는 네 곳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2018년 지방선거 때 공통으로 내건 공약이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1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광역시에 준하는 별도의 권한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지방자치법 32년 만에 전면적으로 개정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수원·용인·고양·창원시장과 시의회의장이 지방차지법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치우 창원시의회 의장, 허성무 창원시장, 이길용 고양시의회 의장, 조석환 수원시의회 의장, 염태영 수원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이재준 고양시장, 김기준 용인시의회 의장. 수원시=뉴스1

지방자치법 32년 만에 전면적으로 개정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수원·용인·고양·창원시장과 시의회의장이 지방차지법 개정안 통과를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치우 창원시의회 의장, 허성무 창원시장, 이길용 고양시의회 의장, 조석환 수원시의회 의장, 염태영 수원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이재준 고양시장, 김기준 용인시의회 의장. 수원시=뉴스1

◆무늬만 ‘특례시’?=그런데 실제 개정 지방자치법을 보면 특례시는 지방자치단체의 한 종류로 분류돼 있지 않다(2조). 대도시에 대한 특례 인정(195조) 조항에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를 명시해 놓고 “이하 ‘특례시’라 한다”고 부연했을 뿐이다. 추가 특례를 둘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어떠한 특례가 주어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염 시장은 “구체적인 특례 내용은 시행령에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안을 심의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민주당 간사 한병도 의원은 “지방자치분권특별법에 따라 이미 100만, 50만 이상 대도시에 상당한 특례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주어지는 다른 특례는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법을 두고 당내에서도 다른 해석이 나올 정도로 조문이 애매하게 다듬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특례시 조항은 광역자치단체와 인구 100만명 안팎의 대도시 기초자치단체 사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혔던 이슈였다. 울산보다 인구 수가 많은데도 지리적 이유로 광역시 승격이 난망했던 수원의 경우 특례시 지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전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송하진 전북지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행정적·재정적 지방분권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특례시가 우후죽순 생길 경우 광역자치단체 권한의 상당 부분을 특례시에 빼앗길 수 있고, 인구 수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러나 시·도지사의 입김이 지배하던 상황은 염태영 수원시장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면서 달라졌다.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는 성남시장 시절 인구 100만 대도시에 대해 특례시를 부여하는 입법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사진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6년 6월 7일 정부의 지방재정법 개정 방침에 대해 "지방정부 재정 하향평준화"라고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 지사와 염 시장, 채인석 당시 화성시장(오른쪽)의 모습.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지사(가운데)는 성남시장 시절 인구 100만 대도시에 대해 특례시를 부여하는 입법에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사진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6년 6월 7일 정부의 지방재정법 개정 방침에 대해 "지방정부 재정 하향평준화"라고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 지사와 염 시장, 채인석 당시 화성시장(오른쪽)의 모습. 중앙포토

◆어제는 동지였는데=국회 논의 과정에선 과거 특례시 입법에 뜻을 같이 했던 이재명 경기지사 등과 염태영 수원시장 등 100만 대도시 기초자치단체장 사이 신경전이 치열했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지역 특성에 맞는 행정사무가 가능할 뿐 아니라, 외국의 도시와 손잡고 국가 발전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며 특례시 지정에 적극적이었지만, 경기지사 취임 이후엔 “시기상조”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 지사는 지난 10월 행안위의 경기도 국정감사 때도 “음식 앞에 다 ‘특, 특, 특’ 붙어있고 끝에만 ‘보통’이면 소외감이 든다. 지방정부끼리 재정을 조정하면 가난한 도시는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돼서 옳지 않다”며 “행정 특례는 인정하되 특례시라는 계급은 부여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염 시장은 “광역자치단체를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도라고 구분한 건 다 특성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며 “광역자치단체는 몇 곳 안 되는데도 그렇게 ‘특’자를 붙이면서 226곳이나 되는 기초자치단체 중 4곳에 ‘특’ 자를 붙인다고 해서 안 될 게 뭐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가)도지사에 선출된 뒤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수는 있으니 그걸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두 사람은 코로나19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두고도 각각 지역화폐(경기)와 현금(수원)으로 나뉘어 한 차례 격돌한 적이 있다. 지역 정가에선 2018년 경기지사 선거 경선 때 염 시장이 이 지사의 경쟁자였던 전해철 민주당 의원을 측면 지원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한병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 간사)이 지난 7일 오전 행안위 소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지난 3일 행안위 전체회의를 거쳐 지난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형석 민주당 의원(왼쪽)은 지난달 30일 소위에서 "특례시 제도는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반론을 폈다. 뉴스1

한병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 간사)이 지난 7일 오전 행안위 소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지난 3일 행안위 전체회의를 거쳐 지난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형석 민주당 의원(왼쪽)은 지난달 30일 소위에서 "특례시 제도는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반론을 폈다. 뉴스1

◆진짜 갈등은 지금부터=행안위에선 염 시장과 손 잡은 김영배(전 서울 성북구청장)·이해식(전 서울 강동구청장)·양기대(전 광명시장) 의원 등 기초자치단체장 출신 의원들이 특례시 조항이 포함된 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소위 논의 단계에서 “주요 대도시가 수도권에 소재해 있는 상황에서 특례시를 인정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해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이형석 의원)는 내부 반론도 나왔다.

그러자 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가 인구 100만·50만·3만명 이상 지자체 연합회와 머리를 맞대고 절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시·도지사연합회 측은 “특례시가 입법화된다면, 광역자치단체로부터 특례시에 대한 재정·사무 이양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도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개정안에 “특례시 지정에 있어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원 감소를 유발하거나 시·도의 도시·군 기본계획 승인 권한을 침해하는 특례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부대의견이 담긴 게 그 흔적이다.

정치권에선 진짜 갈등은 지금부터 시작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 공포 뒤 정비될 특례시 관련 시행령이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100만에 육박한 대도시의 특례 요구가 거세질수록 광역자치단체와 특례시 사이 대립이 노골화할 수 있다. 염태영 시장은 “기초자치단체 재원을 서로 손상시키지 않는 선이라면 특례시에 대한 재정특례는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법률이 상위법령이기 때문에 시행령에 담긴다고 해서 바로바로 특례를 두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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