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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저격’ 호두왕자 “올핸 생쥐왕 아닌 코로나와 싸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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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라운지] 발레리노 이동탁·강민우

올해도 어김없이 ‘호두의 계절’이 돌아왔다. 100년 넘게 전 세계 연말 무대를 지켜온 발레 ‘호두까기 인형’ 얘기다. 하지만 올해 ‘호두까기 인형’들이 싸우는 상대는 생쥐왕이 아니라 코로나19다. 1986년 국내 초연 이래 35년간 연속 매진을 기록해온 유니버설발레단도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공연 스케줄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엄격한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연습에 땀 흘리고 있는 이동탁(33)·강민우(31), 두 ‘호두왕자’도 어떻게든 무대를 사수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유니버설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눈송이 춤 끝나면 다리가 덜덜 #장기자랑처럼 필살기 안무 기회 #생쥐 군단 나오는 장면도 볼 만 #마스크 속 땀 철철 흘리며 준비

“코로나를 이기고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스크 속으로 땀 철철 흘리면서 준비한 만큼 더 간절함이 있습니다.”(동탁) “7월 ‘오네긴’ 이후 예정된 공연들이 다 취소됐거든요. ‘돈키호테’도 준비하다가 취소되고, ‘백조의 호수’는 시작도 못 하고 사라졌죠. 그만큼 소중한 공연이라 방역수칙 잘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민우)

여름에 팥빙수, 겨울엔 ‘호두’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왕자’ 이동탁. 김경빈 기자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왕자’ 이동탁. 김경빈 기자

소녀들의 동심을 저격하는 ‘왕자’들은 사실 둘 다 아기 아빠다. 태어난 지 11일 된 아들 사진을 보여주는 민우는 아직 아빠 된 감동에 젖어 있었고, 동탁은 11개월 된 딸이 천하장사라며 자랑이다. 왕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호두’를 어떻게 소개할까. “일찍 자면 꿈에 호두까기 인형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일찍 자야 된다?(웃음)”(동탁) “‘호두’는 설명 안 해도 아이들이 좋아해요. 특히 저희 버전은 과자 나라에 형형색색 의상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가득하고, 일단 동물 탈 쓰고 나오는 게 재밌잖아요. 애들은 원초적인 것에 반응하니까. 저도 어릴 때 푹 빠져서 보고, 단장님 사인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웃음)”(민우)

매년 하는 작품이지만,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며 마치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진짜 재밌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여름에 팥빙수, 겨울엔 호두”(동탁)라고도 했다.

“11월쯤 되면 라디오에서 호두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죠. 날씨도 추워지면 호두의 계절이 왔구나 싶어요.”(민우) “어렸을 때 생쥐왕과 호두왕자가 싸우는데, 제 눈에는 생쥐왕이 거인으로 보이고 호두왕자는 로봇 같았어요. 사람이 그렇게 절도있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어려서는 상상도 못 하니까. 알고 보니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 동작이더군요.”(동탁) “캔디 대포를 쏘는데 ‘빵’ 소리가 나면 객석에서 아이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대포 잘 날아갔구나 싶고. 다른 공연과 달리 애들이 웃고 시끌시끌한 게 저희도 흐뭇합니다.”(민우)

발레 공연은 비하인드를 알고 보면 훨씬 재밌던데.
동탁: 하이라이트인 눈송이춤에서 우리는 스태프들이 눈을 수동으로 뿌려요. 자동으로 하면 뭉치거나 막히는 사고도 나는데, 수동으로 하면 진짜 눈처럼 풍성하게 쏟아지죠. 근데 이게 옆에서 보면 땀나는 작업이에요. 공연장이 추운데 반소매를 입고 할 정도죠. 양쪽에서 환풍기 타이밍에 맞춰 줄을 당기는 게 우리만의 노하우인데, 나중에 보면 팔이 굵어져 있더라고요.(웃음)

민우: 그때 무대에 서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아요. 가끔 입에 들어가면 좀 힘들지만.(웃음)

동탁: 생쥐 군단이 등장하는 장면도 잘 보세요. 각자 즉흥 안무를 하면서 들어오는데, ‘강남스타일’이 유행했을 때는 말춤도 췄죠. 공연 때마다 아이디어 내서 각자 준비한 걸 보여드리거든요.

민우: 저희도 생쥐를 꽤 오래 했어요. 쥐들이 투덕투덕 싸우는데, 재밌으려고 몰래 누구 한 명 꼬리를 묶어놓고 그 친구만 공격하죠. 그럼 당황해서 다음 순서 자리도 헷갈리고 그래요.(웃음)

고난도 테크닉이 적어서 시시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민우: 주역 파트가 짧고 굵어요. 1막 눈송이 파드되가 끝나면 다리가 덜덜 떨리죠. 들어가서 초코우유를 마셔야 2막을 할 수 있을 정도예요.(웃음) 호두가 ‘주역 등용문’이라는데, 사실 너무 힘들어서 ‘호두’를 할 수 있으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아요. 개개인에 따라 안무를 조금씩 바꿀 수 있는 만큼, 더 고민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동탁: 장기자랑 느낌이에요. 주인공도 그랑파드되에서 새롭게 개발한 테크닉을 선보일 기회도 되죠. 저는 ‘리볼타드(공중에서 장애물을 뛰어넘는 듯한 점프)’ 하는 데 민우는 ‘카브리올(한쪽 발을 높이 차올린 후 다른 발을 차올려 공중에서 부딪치는 동작)’을 하는 식이죠.

민우: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장면이라, 저도 데뷔 때와 지금이 전혀 달라요. 파드되도 무난하게 가기도 하지만 엄청 어렵게 가기도 하고. 주역마다 다 달라서 더 재밌을 거예요.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왕자’ 강민우. 김경빈 기자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왕자’ 강민우. 김경빈 기자

선화예술학교 시절 선후배로 만난 두 사람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호두 왕자 테크닉을 좀 보여달라고 하니, 귀청이 터질 듯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야구선수들처럼 사인을 주고받으며 근사한 테크닉의 향연을 뚝딱 펼쳐낸다. “발레리노들끼리는 다 통해요.(웃음) 제가 고1 때 편입하니 민우는 중3이었는데, 남자가 많지 않으니까 다 같이 클라스를 했거든요. 어려서부터 선후배가 같이 어울린 게 좋았어요.”(동탁) “그때 형이 편입해서 갑자기 리볼타드를 하는 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웃음) 그런 테크닉을 가진 고등학생이 없었거든요. 억눌린 게 터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뭐 그러다 말았어요.(웃음)”(민우) “나 없을 때 연습하던데.(웃음) 전 시골에서 배워서 기본기는 신경도 안 쓰고 화려한 것만 했거든요. ‘남자는 테크닉 아니겠나’ 하면서 길 가다가도 연습을 했죠. 그렇게 까불거리면서 왔는데, 사실 제가 더 충격이었어요. 서울 애들은 정석대로 절제를 하면서 발레도 예의 바르게 하더군요. 기본기 클라스 때 틈만 나면 테크닉 돌다가 혼나곤 했죠.(웃음)”(동탁)

자유로운 안무에 깨알재미 넘쳐

다른 춤이 아닌 발레를 해서 좋은 점은.
민우: 저희는 외국인 단원이 많으니까 글로벌하게 사는 느낌? 타 문화권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도 배우고 친구가 되는 거죠. 사실 안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여기저기 아프고.(웃음)

동탁: ‘로미오와 줄리엣’ 할 때 너무 해보고 싶던 티볼트 역할을 맡아서 차만 타면 그 음악을 듣고 다녔어요. 너무 몰입해서 교통 사고가 날 뻔 했을 정도로. 그렇게 몰입했다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요. 시공간을 초월해서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호두까기 인형’이 코로나를 이길 수 있을까요.
동탁: 코로나 걱정을 뚫고 와 주시는 관객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소중한 걸 느껴요. 거기 보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준비 잘했나 확인하러 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민우: 연습할 때 항상 생각해요. 어렵게 와주시는 관객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만족하실 수 있게 잘해야 한다고. 예술가의 책임을 느낍니다.

중앙SUNDAY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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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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