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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마저 등진 ‘가난한 운동가’ 정신 살아있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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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호 21면

시로 읽는 세상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널리 알려졌는데도 숨은 뜻이 잘 드러나지 않은 시들이 있다. 좋은 시는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걸까. 또, 오래되었는데도 현재적 의미로 되살아나는 시들이 있다. 이 두 경우에 부합하는 사례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꼽고 싶다. 교과서에도 실렸고 각종 시험에도 출제되었지만, 이 시만큼 성글게 이해되었으면서 오늘의 삶에 엄중한 물음을 던지는 시도 드물다 여겨서다.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노동자 청년과 술집 딸의 사랑가 #인간적 번민 벼랑서 ‘운동’ 선택 #민주화 운동기 시대정신 응축 #‘별세계’ 사람들에게 물음 던져

#1987년에 발표되고 이듬해 동명의 시집에 수록된 이 시를 대체로 ‘어렵지 않은’ 작품이라 말한다. 그래서 중학교 국어책에 실렸을 것이다. 농촌 출신의 가난한 젊은이가 있다. 그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하여 그 사랑이 벽에 막힌다. 심지어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과 같은 인간적 감정마저 포기해야 한다. 그런 가슴 아픈 처지를 읊은 시라는 것이다. 전문은 이렇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시는 다섯 번 물음을 던지고 한 번 비감히 대답한다. 물음은 다 수사적 의문으로서 반대의 뜻을 강조해 말한 것이다. 가난하지만, 또는 가난하기 때문에 오히려 외로움을 잘 알고, 두려움을 더 느끼고, 그리움에 깊이 젖고, 더 절실히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화자는 이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할수록 더욱 소중할 인간성의 항목들을 왜 버려야 하는 걸까.

이 역설적인 문장에 물질적 가난을 대입해 읽으면 뜻은 대략 이렇게 된다. 화자는 각박한 도시의 노동자이자 빈민으로 꿈도 희망도 없이 사는 처지다. 그는 연애의 미래를 그릴 수도 없고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인간적 내면조차도 상실한 채 산다. 그렇기에 이 인물의 삶은 곧 현대인 전부의 마음 가난과 진실 훼손으로 확장된다. 이런 이해는 시를 ‘가난과 사랑의 대립’으로 파악한 결과이다.

물질적 가난으로 인한 사랑의 좌절은 현실에도 드라마에도 흔하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시에 그려진 인간적 감정들은 더 짙어져 일용할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걸 버리고는 가난을 견딜 수도 없고 더 살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니, ‘말이 안 되는’ 이 말에는 다른 까닭이 들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발등의 불인 사랑보다 더 중대사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이 평전을 읽게 되었다.

나중에 그 딸이 혼인을 앞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 될 사람은 현장 노동자. 그런데 운동권이라고 했다. 인천의 노동쟁의사건으로 쫓기던 노동자 청년과 술집의 딸은 결혼을 하기로 했다며 그에게 말했다.

이경자 작가가 쓴 『시인 신경림』의 한 대목이다. 여기에 기대면 가난은 그저 물질적 가난이 아니게 된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술집의 단골이었던 시인은, 그들의 사연에 감동하여 축시를 쓰고 주례를 서 준다. 그날 귀가해서 쓴 또 한 편의 시가 바로 ‘가난한 사랑노래’다. 시 속의 두 사람은 앞날을 두고 의논하다 다투었고, 화자가 먼저 돌아섰고, 애인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화자는 혼자 돌아와, 버려야 하는 마음의 고통을 신음처럼 토해 낸다.

처음에 그는 그저 가난한 소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전태일이 그러했듯 가난이 개인의 무능 때문만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산물이기도 함을 알았고, 이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가난은 화자에게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각성의 바탕이면서, 극복해야 할 공동체의 문제가 되었다. 그는 가난 속에서 거듭난 운동가이다. 그렇기에 “가난하기 때문에”는 ‘가난한 운동가이기 때문에’로 고쳐 읽어야 한다.

이 시의 ‘가난과 사랑의 대립’에는 ‘운동과 사랑의 대립’이 숨어 있다. 운동가의 길을 가려면 인간적 감정들과 개인적 행복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거나 정지시켜야 한다. 수배받는 그는 약해지려는 마음과 사랑의 기쁨을 모두 참아 내려 한다. 이걸 등에 지고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저 혼자 다치려 하는 선하고 캄캄한 젊은이다. 그는 운동을 선택한다. 그것은 인간적 번민의 벼랑에서 내린 실존적 결단이었다.

#시인은 이 젊은 운동가와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정의에 헌신하는 운동가로 남아 있을까. 가난하더라도 그가 의연히 사랑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대를 따로 또 같이 살았던 젊은이 중엔 지금 사회의 중추에 선 이들이 많다. 나는 최근의 정치적 혼란을 요약할 능력이 없지만, 운동적 가치가 희석되고 반성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재작년에 숨진 태안화력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아들 관련 회의에 처음 나갔을 때 산별 노조를 삼별 노조로 듣고, 별 세 개인가보다 했다고 한다. ‘별 세 개’가 바로 이 시대 서민 대중의 진실이다. 이 진실을 못 보는 건 우리가 ‘별세계’에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별 세 개의 순진성에 응답하지 않고 이 별세계가 유지될까. ‘가난한 사랑노래’는 민주화 운동기의 시대정신을 응축한 명편이다. 지금 이 시를 함께 읽고 싶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교수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계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서정성과 불온함이 공존하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집 『끝없는 사람』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을 냈다.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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