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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웜비어, 메구미 기억”…마지막 강연서 北인권 문제 꺼낸 비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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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북한을 향해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당 대회를 전후로 외교적 협상을 재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10일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공개 강연 #"北, 1월 8차 당대회 후 외교 재개 강력 촉구" #"싱가포르합의는 첫 북·미 정상급 비핵화 약속" #"北안전보장·제재 완화 동시·병행적 논의 가능" #종전협정·연합훈련 참관·연락사무소 개설도

8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방한한 비건 부장관은 이날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원 공개 강연을 통해 마지막 대북 메시지를 발표했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강연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대북특별대표로 활동했던 소회를 밝혔다. 비건 부장관은 이날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길게 언급했다. “싱가포르 합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인권과 같은 가장 민감한 문제도 북한과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해 만난 프레드 웜비어와 신디 웜비어의 아들 오토는 비극적인 학대로 부당하게 북한에 수감됐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 했다”며 “살아있었다면 이번 토요일에 스물 여섯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수만 명의 한국인과 재미교포들은 북한에 남겨진 친척들을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고통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고, 일본에서는 요코타 시게루가 (북한에 납치된) 딸 메구미와 재회하기를 수십년 간 기다리다 올해 사망했다”며 “미국에는 제시 브라운 소위(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처럼 가족들과 합당한 작별을 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2019년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2월 2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의제 조율 첫 협상을 마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숙소로 돌아오고 있다. [뉴시스]

2019년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2월 21일 오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의제 조율 첫 협상을 마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숙소로 돌아오고 있다. [뉴시스]

비건 부장관은 “오토와 시게루, 제시가 남긴 유산과 70년을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의 희망은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박함을 알려준다”며 “우리는 또한 수십 년의 적대감과 고립, 제재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을 향해 쓴소리도 쏟아냈다. 그는 “지난 2년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내가 실망했는지 다들 궁금할 텐데, 물론 그렇다”며 “유감스럽게도 북한 카운터파트들은 무수한 기회를 잡는 대신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 일에 몰두하는데 지난 2년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019년 3월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019년 3월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북한은 내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 대회 등 중요한 외교 이벤트들을 앞두고 있다”며 “그때까지 북한이 외교 재개의 길을 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은 “새로운 (조 바이든 행정부) 팀에 우리의 모든 경험과 제안, 어렵게 얻은 지혜들을 공유할 것”이라며 “새로운 정부에 ‘전쟁은 끝났고, 평화를 위한 시간이 왔으며, 우리가 성공하려면 미국, 한국, 북한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전달할 것”이라고도 했다.

"싱가포르 합의, 북·미 정상 간 첫 비핵화 약속"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PA=연합뉴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PA=연합뉴스]

비건 부장관은 “2018년 6·12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가 정상급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한 최초의 약속”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작은 규모의 거래 대신 빅딜, 큰 조치와 큰 결정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단계적 접근을 원하는 이들에겐 이점이 불만이었겠지만, 이 비전은 담대한 것이었다”고도 옹호했다.

그는 “북한은 장기적인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 경제발전에 관심이 있었고, 우리는 이것이 비핵화와 병행적, 동시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면서도 미측은 비핵화의 전체 로드맵과 최종적인 비핵화 상태(end state)를 북한이 동의하기를 바란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비건 부장관은 “우리가 뭔가를 하기 전에 북한에 전부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며, 북한도 그걸 요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에 동의할 경우 미측은 “한국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하기 위한 협정(treaty)에 대한 외교적 협상 추진, 연합훈련 참관인 파견, 군사 분야의 인적 교류,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양국 수도에 외교 연락 사무소를 개설하는 것 등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미측이 북한 비핵화와 병행해 제안했던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9월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비건 부장관은 싱가포르 합의와 관련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됐다.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아쉬움을 언급할 때는 “북측 카운터파트에 비핵화 협상의 권한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중앙TV가 보도한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작별' 장면. [연합뉴스]

조선중앙TV가 보도한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작별' 장면. [연합뉴스]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장을 걸어나가며 북한이 요구한 이른바 '영변 폐기안'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비건 부장관은 “영변은 완전한 비핵화의 중요한 요소”라면서도 “영변이 다가 아니라는 게 (협상의)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강선 등 영변 외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포기도 함께 요구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미동맹 北 방어 넘어서 진화해야"

비건 부장관은 한·미동맹이 진화(rejuvenate)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오랫동안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방어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한·미동맹은 이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며 “진화된 한·미동맹은 방위비 분담금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둘러싼 양국의 이견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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