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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만 비춰도 손님일까 마중나간다…속 타는 소상공인들

중앙일보

입력

서울 여의도 IFC몰 내 카페가 늘어선 층에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소아 기자

서울 여의도 IFC몰 내 카페가 늘어선 층에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소아 기자

점심 사라져 장부거래 끊겨

6년 째 서울 서대문역 근처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41)씨는 지난달 직원들을 전부 내보내고 주방은 장모님이, 서빙은 박 씨와 부인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월 600만~700만원 정도 하던 수익이 150만원 아래로 떨어진 탓이다. 박 씨는 “주변에 사무실들이 많아 직원들이 식사하면 회사별로 정산해 주는 장부거래가 많았었는데, 재택 근무가 늘면서 고정 매출이 끊긴 게 가장 큰 타격”이라며 “임대료 내고 세금 내면 적자인데 아기 얼굴 떠올리면서 버틴다”고 말했다.

거리두기 2.5단계 강화 조치가 연말인 28일까지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피해가 큰 자영업자들은 한계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50대 김 모 씨는 “외식업이 3주 동안 못하면 그걸로 끝”이라며 “1월은 각종 공납금 내야 하고, 2월은 봄방학으로 원래 (장사) 안 되는 달이고, 3월은 애들 등록금을 내야하는데 지금부터 3개월을 어떻게 버틸지 꺽꺽 울고 싶다”며 “인건비와 집세 밀린 게 누적됐는데 (재난지원금)100만원이 무슨 소용이냐. 확실한 백신이나 빨리 내달라”고 호소했다.

인근 A 횟집 체인점 관계자 역시 “1단계 때만 해도 직장인 점심 손님은 꽤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식당 입구 자동문 앞에 그림자만 비쳐도 손님이 아닐까 마중 나가곤 한다”고 전했다.

유통업계 최악의 2020년 

유통업계에선 ‘연말 장사는 없다’며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국내 유통대기업 관계자는 “연말 쇼핑 대목이 날아간 올해의 심정은 딱 미국 ‘타임지’ 표지, 그 자체”라고 답답해했다. 미국의 유력 잡지 타임지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2020이라는 숫자에 붉은색 엑스(X)를 친 표지와 “역대 최악의 해(THE WORST YEAR EVER)”라는 문구를 게시해 화제가 됐다.

TIME 공식 트위터 캡처.

TIME 공식 트위터 캡처.

업체마다 인터넷 상에서 비대면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무너진 오프라인 매장 판매량을 상쇄할 만큼 매출 증가세가 뚜렷하지는 않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물론 자사몰, 라이브커머스 등 온라인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할인 폭을 크게 하다보니 수익은 늘지 않는 딜레마가 크다”며 “온라인이 성장세인 건 맞지만 과연 수익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생색내기 정책보다 빠른 종식을”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거리두기 시책에 반발하는 기류도 가시화 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전쟁에 왜 자영업자만 일방적 총알받이가 되나요? 대출원리금 임대료 같이 멈춰야 합니다’란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글은 8일 오후 6시 기준 8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고 있다.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이근재 사장은 “정부가 방역이냐 경제냐를 두고 왔다갔다 하는 과정에서 소상공인들만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영업자들이 내수를 이끌어 가는 부분이 큰데, 일회성 재난지원금을 주면서 생색내기 하는 대신,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를 종식하고 소상공인들을 회복시킬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택 50~70% ‘회식금지령’  

대기업들은 이미 정부 대책보다 강화된 3단계에 준하는 근무지침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9일부터 소비자가전, IT·모바일 등 일부 사업부문에서 순환 재택근무를 도입하기로 했다. 부서별로 3교대로 나눠 일부는 회사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는 순환 재택근무를 도입하기로 했다. 회의 참석인원 10명 미만 제한, 출장 제한, 회식 금지 등 자체 지침도 강화했다.

현대차는 연말까지 출장을 전면 금지하고, 재택근무 비중을 30%에서 50%로 확대했다. SK와 LG도 주요 계열사들의 재택 비율을 70%로 올렸다. 포스코는 8일부터 집합교육·워크숍 등 행사를 전면 중단하고 사무실내 층간 이동마저 가급적 제한토록 했다. 한화솔루션의 한 직원은 “점심때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구매식당에서 샐러드나 도시락을 사서 각자 자리에서 먹는 분위기”라며 “다들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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