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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측근 사망에 지역 정가도 혼란 "끝까지 의리 지킨다던 사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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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자산운영(옵티머스)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던 이모(54) 더불어민주당 대표 비서실 부실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그가 활동했던 광주·전남 지역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이 부실장은 지난 2일 오후 검찰 조사를 받고 사라졌다가 다음날 밤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역 정가에서는 숨진 이 부실장을 두고 “이낙연 민주당 대표 곁에서 궂은 일을 도맡으며 ‘주군’처럼 모셨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6년 한때 호남에서 코너에 몰렸던 민주당을 살려내다시피 한 조직의 귀재”라는 평도 들린다.

“NY(이낙연) 20년 동지이자 정치적 동반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올린 추모글. SNS 캡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올린 추모글. SNS 캡쳐

이낙연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지를 보내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자신의 측근 이 부실장을 추모했다. 이 대표는 이 부실장을 “20년 동지”라고 했다.

지역 정가에서 이 부실장을 지켜봤던 민주당 광주시당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2000년 총선 때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에 출마하기 전후부터 함께해온 정치적 동반자로 기억한다”며 “광주·전남 쪽에 관련된 일이라면 대부분 이 부실장이 도맡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실장은 이 대표가 국회의원 시절 10년 가까이 비서관과 지역 보좌관 업무를 맡았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부각된 시점은 2014년 전남도지사 선거 당시 불거진 ‘당비 대납 사건’이다.

“모든 책임 떠안았던 측근”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낙연 전남도지사 후보가 전남 순천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유력하자 부인 김숙희씨와 함께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낙연 전남도지사 후보가 전남 순천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이 유력하자 부인 김숙희씨와 함께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전남도 선관위는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전남도지사 경선에 나선 당시 이낙연 후보 측에서 당원 2만6117명의 당비 3178만원을 대납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이 부실장은 이 일로 1년 2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지역 정가 관계자는 “이 부실장으로부터 검찰이 자신을 강하게 압박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며 혼자 감당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소 직후 이낙연 지사 정무특보로 복귀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7일 당대표 경선에 출마할 당시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을 찾아 김영록 전남지사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7일 당대표 경선에 출마할 당시 전남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을 찾아 김영록 전남지사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 부실장은 2016년 1월 당시 이낙연 전남도지사의 대내외 활동을 보좌하는 ‘정무특보’에 임명된다. 이 부실장이 출소한 지 몇달 만에 단행된 인사를 놓고 지역에선 “보은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전남도청 한 관계자는 “실형을 살다 온 사람이 정무특보 자리에 앉는 것을 놓고 부정적인 시선이 있긴 했는데 당시 이 지사의 신뢰를 받아 직무를 수행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부실장은 정무특보 임명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지사에게 누가 안 되게끔 잘해야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석연찮은 죽음에 뒤따른 의혹

그런 이 부실장이 옵티머스 관련 업체로부터 사무실 복합기 비용 대납 의혹과 여의도 사무실 임차 과정 등에 대한 조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 부실장과 가끔 술자리를 가졌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이 부실장은 술자리에서 ‘이 대표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이라는 얘기를 종종 했다”고 전하며 이 부실장을 “이 대표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 부실장이 최근 검찰에서 광범위한 주변 조사를 받으면서 강한 압박감을 느낀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지역 인사 “최근 만났지만 특별한 전조 없었다”

이 부실장과 최근 만났던 한 지역 인사는 “몇주 전 만났을 때만 해도 극단적 선택을 할만한 낌새는 없었다”며 “평소에 봐왔던 이 부실장은 배경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다닐만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최근 불거진 의혹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이 부실장은 광주·전남 지역 민주당 내부에서 “충직한 스타일에 대인관계가 좋은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정가 관계자는 “이 부실장은 2016년 총선 때 호남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불어 다 죽어가던 민주당 조직을 다시 살려낸 사람”이라며 “최근 모친상 와중에도 당무와 관련해 물어보는 전화에 일일이 답변할 정도로 열정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지난 5일 이낙연 대표의 측근 이모씨가 영면한 광주광역시 북구 영락공원.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이낙연 대표의 측근 이모씨가 영면한 광주광역시 북구 영락공원. 프리랜서 장정필

이 부실장의 죽음 뒤 광주·전남 민주당은 침통한 분위기라고 한다. 지난 5일 광주광역시 북구 영락공원에서 이씨가 영면할 때는 유가족 등 일부만 참석한 채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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