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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 발인날이 대표 100일…이낙연의 난국 보여주는 장면

중앙일보

입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대표에 취임한 지난 8월 29일 자가격리중이었다. 그는 지난달 21일 또 한차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두 번째 자가격리(2주간)에 들어갔다. 사진은 격리를 마치고 지난 4일 국회에서 복귀한 이 대표.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대표에 취임한 지난 8월 29일 자가격리중이었다. 그는 지난달 21일 또 한차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두 번째 자가격리(2주간)에 들어갔다. 사진은 격리를 마치고 지난 4일 국회에서 복귀한 이 대표. 뉴스1

6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울음을 누르며 기도만 드렸네. 아프네”라고 쓴 페이스북 글로 하루를 시작했다. 4·15 총선 선거사무실 복합기 대납 의혹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측근(이모 민주당 부실장)의 발인 날이었다. 이날은 이 대표가 지난 8·29 전당대회에서 압승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는 기자간담회나 별도 메시지 없이 최소한의 일정만 소화했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 신조어와 함께 당대표에 오른 이낙연의 100일은 시작만큼 순탄치는 못했다. 득표율 60.8%로 낙승한 직후 “코로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정부는 6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기존 2.0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한다고 발표했다. 뜻대로 되지 않은 건 코로나 19 확산세만이 아니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 총장 직무정지·법원 집행정지 등 사상 초유 사태를 거듭하며 치달았고 전·월세난 대책 마련차 출범한 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에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진선미 추진단장)이란 실언이 나와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이 밖에도 실종 공무원 월북 논란(9월22일), 김해신공항 전면 재검토 결정(11월17일), 3차 재난지원금 논의 과정 등에서 민주당의 움직임은 부드럽지 못했다.

현장형 ‘꼼꼼 정치’

이낙연 대표가 5일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찾아 연구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방문에서 백신 생산 현장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대표가 5일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찾아 연구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방문에서 백신 생산 현장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전국 투어급 민생 행보를 펼치는 한편 입법 과제를 일일이 챙겼다. “하루 이동 거리가 어마무시하다”(의원실 보좌진)고 주변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모 부실장 빈소가 꾸려진 다음날(5일)에도 이 대표는 코로나 백신 생산 현장 점검을 위해 경북 안동을 찾았다.

입법 현안들에 대해선 ‘이테일(이낙연+디테일)’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대표는 코로나 19 자가격리 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일요일 저녁 총리공관에서 열리는 고위 당·정 회의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특정 현안이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참석하던 이해찬 전 대표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20일 스스로 꼽은 4개 분야 15개 ‘미래입법과제’를 발표하며 정기국회 처리를 약속했을 땐 민주당 내부에서 “원내대표인지 당 대표인지 헷갈린다”(원내 관계자)라는 반응도 나올 정도다.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 등으로 신경을 써 온 입법들은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다. 야당의 반발을 억누르고 국정원 개정안 등의 상임위 처리를 마쳤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등 나머지 쟁점법안들은 9일에 한 번에 밀어붙일 기세다. 내년도 예산안과 경찰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선 야당과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도 있었다. 취임 때 강조한 “통합의 정치”가 잠시 조명되는 순간이었다.

문파-중도 사이에서 고심

당대표 이낙연의 100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대표 이낙연의 100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의욕을 보였던 필수노동자보호법, 생활물류법 등은 진전이 더뎌 정기국회 내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책 추진 과정서 이 대표가 당·정 엇박자의 주인공이 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난 9월 이 대표가 꺼냈던 전 국민 통신비 지급안이 정부에 가로막혀 무산됐고 지난달 초 확정된 1주택자 재산세 완화 기준 수립 때도 6억원이냐 9억원이냐를 두고 이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호텔 전·월세’를 정부보다 먼저 언급해 스스로 ‘호텔 거지’라는 뭇매를 맞는 발화점이 됐다. 그 과정에서 총리 퇴임 전후 40%까지 치솟았던 이 대표의 지지율은 최근 20% 안팎으로 내려앉아 있다.

여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과제에선 일부 성과를 냈지만 이낙연만의 색깔을 부각하지 못했다”(전직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대표가 총대를 메고 김홍걸·이상직·정정순 의원 관련 논란을 잇달아 정리한 건 높게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그 외 문제에 있어 이쪽저쪽 눈치를 많이 보는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 낙승의 동력이 됐던 ‘문파’(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 단속과 중도 확장을 동시에 고민하다 빚은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지난달 초 전당원 투표를 통해 ‘무공천 당헌’을 뒤집었을 때도 민주당 안팎에서는 “무리하면서까지 난제를 해결했다”(여권 인사)는 평가와 “당원을 끌어들여 정치적 결단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위한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위한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찾아 의견을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 대표의 핵심 측근은 통화에서 “무엇보다 임기(7개월)가 짧고, 그마저도 당대표 역할에 갇혀있다보니 정치적 수를 자유롭게 던지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선관위 고발에서 이어진 검찰의 옵티머스 수사가 측근이 이경호 부실장 사망으로 일단락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날 이 대표가 남긴 추모글 중 “(고인과) 함께 일하거나 각자의 생활을 했다”는 대목은 “검찰 수사 내용과 본인이 무관함을 시사한 것”(당직자)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대선 출마 시 당대표 사퇴 시한(내년 3월9일)까지 남은 시간은 93일이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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