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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장비 쓰면 미군 주둔 재검토” 미 상·하원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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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의회가 화웨이와 중싱통신(ZTE) 등 중국산 5G 네트워크 장비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미군 부대나 주요 무기체계 배치를 재검토(reconsider)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입법이 현실화하면 LG 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미군 2만8500명이 주둔 중인 한국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 견제…한국 등 압박 세질 듯 #미, 동맹에 화웨이 퇴출 동참 촉구 #“전략적 가치 있는 주한미군 대신 #한국엔 방위비 인상 등 요구할 듯”

미국 상·하원은 지난 3일(현지시간) 이 같은 새로운 조항이 담긴 2021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 2021)에 합의했고, 수일 내 양원에서 표결로 통과시킬 예정이다. 양원 군사위원회가 공개한 법안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은 (군 자산의) 해외 배치를 결정할 때 화웨이나 ZTE처럼 위험한 공급자에 의한 안보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보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더해 국방부 장관은 법이 발효한 지 1년 이내에 평가 보고서도 제출하도록 했다. ▶주둔국이 현재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거나 도입할 예정이라서 미군 인력과 장비, 작전에 미칠 수 있는 위협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들에 대해서다.

또 화웨이의 5G·6G 장비를 사용하는 나라에 미군과 장비가 상주(영구 주둔)하거나 추가 배치되려면 주둔국이 위험 경감 조치를 취하고, 관련 비용도 분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미군의 주요 무기 체계 또는 육·해·공군 대대(1000명) 이상 부대를 추가 배치하려면 주둔국이 화웨이 장비 등으로 인한 위험을 인정했는지를  미국 국방부 장관이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LGU+, 화웨이 사용…한국도 미군·무기 재배치 압박 대상

미 국방부와 주둔국은 주둔 미군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양국이 관련 비용을 분담하기로 합의했는지도 보고해야 한다.

즉 한국 기업이 화웨이 장비를 쓰는 게 주한미군에 미칠 위험성을 평가하고, 위험성이 너무 커서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국방부 장관이 판단하면 의회가 이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안은 ‘장비’도 재조정 대상에 넣어 전략·정찰자산 등 주요 무기 체계 배치도 축소할 수 있게 했다.

미국은 그동안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의 5G 네트워크 장비가 중국 공산당으로 연결되는 정보의 ‘뒷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식으로 각국의 주요 기밀이 새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웨이 관련 조항을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과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에서 초당적인 합의로 법 문안으로 못 박은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행정명령이 아니라 법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간 건 트럼프 행정부에서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된 뒤에도 계속 적용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범철 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중국의 도전을 억제해야 한다는 건 ‘워싱턴 컨센서스’”라며 “화웨이와 ZTE 견제는 군사보안은 물론 중국 첨단산업 견제 차원에서 양당의 공감대가 형성된 문제이고, 바이든 행정부도 계속 승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이런 초강수는 화웨이 장비 퇴출 동참에 소극적인 동맹과 우방국들을 압박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미군이 상당 규모 주둔하고 있는 나라 중 영국과 호주는 이미 화웨이 퇴출을 선언했고, 일본은 곧바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하지 않는 대신 보안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미국에 전달했다. 독일은 5G 네트워크에서 특정 장비를 제외하려면 내각에서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내용의 IT 보안법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이는 안보에 위혐이 된다는 명백한 증거 없이는 현재 사용 중인 화웨이 장비를 퇴출하기 어렵다는 뜻이지만, 내각의 결정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은 사기업이 결정할 일이라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다소 애매한 태도에 한국이 결과적으로 이번 화웨이 조항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를 즉자적으로 주한미군 감축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국방수권법안의 전제는 ‘주둔 미군에 위협이 된다면’인데, 지금까지 미국이 LG 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사용으로 인해 주한미군에 안보 위협이 발생했다는 우려를 한국 정부 측에 표명하거나 문제가 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군사 굴기를 막으려는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을 축소하는 게 오히려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신범철 센터장도 “주한미군과 관련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압박은 커지겠지만 한국에는 선택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미사일 방어에 필수적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등을 철수하진 않으면서도, 향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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