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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돌연 尹징계위 절차 강조 왜···“MB정권때 정연주 학습효과”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신임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위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신임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위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추미애·윤석열 사태'에 침묵해왔던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적법절차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3일 "징계위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힌 뒤, 징계위 연기를 반대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발 물러나며 윤 총장의 징계위를 4일에서 10일로 연기했다.

文의 절차강조, 정연주 학습효과일까  

법조계는 문 대통령이 윤 총장 징계위의 공정 절차를 강조하는 모습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학습효과"라 해석하고 있다. 2008년 정권 눈밖에 나 표적감사를 당한 뒤 쫓겨났던 정연주 전 KBS사장이 해임 취소소송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삼아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정 전 사장의 해임을 승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KBS사장의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의 여지가 있다"고 판결하며 정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당시엔 직권남용이 사문화 돼 이런 판결 후에도 추가 수사가 없었지만 지금과 같은 직권남용의 시대엔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열릴 징계위를 앞두고 전선을 가다듬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열릴 징계위를 앞두고 전선을 가다듬고 있다. [뉴스1]

秋가 뽑은 사람이 채워질 尹의 징계위 

윤 총장 측은 10일 징계위에서 정 전 사장 때와 같이 해임이나 정직 등의 중징계 처분을 예상하고 있다.

검사징계법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과 추 장관이 지명한 검사 2명, 추 장관이 위촉한 3명의 외부위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모두 윤 총장보다는 추 장관과 가까운 인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결정되면 추 장관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하게 된다. 윤 총장 측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연주 사장의 판례도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 측은 어떠한 징계를 받더라도 법무부를 상대로 징계처분 집행정지와 취소 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때 피고는 국가공무원법상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소송을 제기한 정 전 사장과 달리 윤 총장이 속한 부처의 장관, 즉 추 장관이 된다. 이미 진행 중인 윤 총장의 직무배제 소송에 이은 윤 총장과 추 장관의 두번째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해임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준비해 온` 국민에게 드리는 글 ` 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해임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준비해 온` 국민에게 드리는 글 ` 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정연주 해임취소, 문제는 절차였다 

정 전 사장 사건의 경우 법원은 정 전 사장의 해임을 결정한 KBS이사회가 ▶정 전 사정에게 사전통지를 하지 않은 점 ▶해임 처분에 대한 정 전 사장의 의견제출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점 ▶정 전 사장에게 해임 당시 처분의 법적 근거와 구체적 사유를 제시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정 전 사장의 해임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당시 KBS의 경영난과 적자에 정 전 사장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절차적 문제점을 강조하며 그의 해임처분을 취소했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가 열리기 전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과정부터 법무부가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윤 총장에 대한 조사와 객관적 근거 없이 감찰을 밀어붙여 정 전 사장의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 법률대리인 이완규 변호사가 1일 법무부에서 열린 법무부 감찰위원회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 측 법률대리인 이완규 변호사가 1일 법무부에서 열린 법무부 감찰위원회에 참석해 의견진술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윤 총장 측 "정연주 판례 참고하고 있다" 

윤 총장 측은 "직무배제 집행정지 소송에서 패소한 추 장관 측 입장에선 징계위 절차에서도 문제가 생길 경우 향후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공정 절차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의 의도는 윤 총장의 향후 소송에 대한 자신들의 방어권 행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무원 징계위 사건을 변호한 경험이 있는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향후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가 단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차례에 걸쳐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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