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조항 너무 많은 ‘맹탕’ 재정준칙 입법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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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정부가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재정을 사용할 때 준칙을 적용해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도를 넘어 본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광범위해 ‘맹탕 준칙’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적자 심해도 빚으로 예산 편성 가능 #재정건전성 지킨다는 취지 퇴색

기획재정부가 30일 공고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의 핵심은 “예산안 또는 추경안을 편성할 때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및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해야 하며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 재정 건전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정부는 예외 상황으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인명 또는 재산의 피해가 매우 크거나 사회·경제적으로 영향이 광범위한 재난(대규모 재해) 발생 ▶외환·금융위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준하는 성장·고용상의 충격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명시했다. 이런 경우는 이미 재정 적자가 심각하더라도 빚을 더 내서 예산을 짤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정부는 국가채무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60% 이내,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2025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세계잉여금(해당연도에 정부가 쓰고 남은 돈)의 50% 이상을 나랏빚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애초에 재정준칙의 한도가 높은 데다 시행령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예외 조항까지 많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준칙”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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