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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에 ‘아미’ 있다면 ‘티예무’엔 ‘열무’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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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최장수 예술 프로 한봉근 PD

한봉근 PD는 1992년 ‘수요예술무대’로 연출을 시작한 이래 통산 1000회째 ‘예술무대’ 방송을 지키고 있다.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MBC ‘가곡의 밤’ 무대 앞에 선 한 PD. 김경빈 기자

한봉근 PD는 1992년 ‘수요예술무대’로 연출을 시작한 이래 통산 1000회째 ‘예술무대’ 방송을 지키고 있다. 지난 1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MBC ‘가곡의 밤’ 무대 앞에 선 한 PD. 김경빈 기자

화제의 클래식 공연 티켓을 못 구했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가장 핫한 클래식 공연만 쫓아다니며 중계하는 MBC ‘TV예술무대(이하 티예무)’가 있기 때문이다. 12월 6일로 400회를 맞는 ‘티예무’의 역사는 길고 복잡하다. 1992년부터 피아니스트 김광민, 가수 이현우의 진행과 바비 맥퍼린·사라 브라이트만·케니 지 등 해외 유명 뮤지션의 라이브 무대로 팬덤을 형성했던 ‘수요예술무대’의 맥을 잇고 있다. 방송 제작 환경이 변화하면서 2013년부터는 매주 일요일 새벽 2시에 클래식 공연을 실황 중계하는 ‘TV예술무대’로 새출발했다.

‘TV예술무대’ 내달 6일 400회 #‘수요예술무대’ 이어 1000회 연출 #핫한 클래식 공연 중계로 정평 #빈필·뉴욕필 등 생방송 도맡기도 #코로나 여파 하우스콘서트 시도 #“클래식 접하는 삶은 큰 보너스”

600회로 막을 내렸던 ‘수예무’부터 치면 꼭 1000회째 방송을 맞는 12월 6일 방송은 그 옛날 ‘수예무’를 추억하며 공개 녹화 방송으로 진행된다. 진행자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현재 독일 체류 중이라 ‘수예무’의 대명사 김광민이 스페셜 MC로 등장하고,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소프라노 박혜상,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대니구·고소현, 비올리스트 이수민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출동한다. 92년 ‘수예무’의 탄생부터 방송을 지켜온 한봉근 PD(62)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온 사람들이다.

“유키 구라모토는 한국 첫 데뷔를  ‘수예무’에서 했죠. 올해가 본인 데뷔 30주년이기도 하고, 이번이 ‘티예무’ 400회 특집이라며 나름 신경을 많이 쓰더군요. 당시엔 뉴에이지를 다루는 프로가 없어서 우리가 그런 분들을 많이 발굴했거든요. 초기엔 섭외가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티스트들이 먼저 손을 들더라고요. 김광민씨와 같이 연주도 하고 음악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좋았는지, 출연료 한 푼 안 받고도 모두 만족했어요. 칙 코리아, 허비 행콕, 케니 지 같은 사람들은 서로 나오겠다고 해서 대여섯번씩 왔다 갔죠.”

17일 MBC 가곡의 밤 특집방송 중계차에서 만난 한봉근 PD와 후배 한경화 PD, 엔지니어들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 지난해 정년퇴임했지만 프리랜서로 ‘티예무’와 각종 특집방송 녹화를 여전히 책임지고 있는 한 PD를 후배들은 “오케스트라 생방송계 최고의 연출가”라고 추켜세웠다. 실제로 지난 30여년간 ‘쓰리테너’ 내한 공연을 비롯해 빈필, 뉴욕필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생방송을 도맡아 온 게 그다. 한양대 작곡과를 나온 경력 덕분이다. “악보를 읽어야 하니까요. 오케스트라 연주는 예컨대 바이올린에서 플루트로 갈 때 카메라를 스탠바이 시켜야 하거든요. 카메라가 한정돼 있으니, 메인 악기가 바뀌기 3마디 전에 악보 보는 사람이 콜을 해줘야 하죠.”

12월 6일 방송되는 ‘티예무’ 400회 기념 녹화 방송에 출연한 아티스트들. 왼쪽부터 한봉근 PD·이수민·신지아·고소현·유키구라모토·박혜상·대니구·김광민. [사진 MBC]

12월 6일 방송되는 ‘티예무’ 400회 기념 녹화 방송에 출연한 아티스트들. 왼쪽부터 한봉근 PD·이수민·신지아·고소현·유키구라모토·박혜상·대니구·김광민. [사진 MBC]

올해 공연 영상화 붐으로 클래식 라이브 스트리밍이 많이 시도됐지만, 따지고 보면 한 PD가 ‘공연 스트리밍계의 시조새’인 셈이다. “MBC가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많이 주최해서 특집 생방송을 꾸준히 해왔거든요. 그 바람에 뉴욕필 같은 큰 공연을 제가 많이 할 수 있었던 거죠.”

코로나19는 ‘티예무’에도 변화를 주었다. 실황 녹화할 만한 공연이 줄어드니 조심스레 하우스콘서트 제작을 시작한 것이다. 400회 특집 콘서트가 가능해진 이유다. “코로나가 전환점이 됐달까요. 피아니스트 김정원씨 집에 가서 처음 찍었는데, 반응이 좋더군요. 그 뒤로 MBC 스튜디오에서 손열음, 손태진씨 콘서트도 그렇게 열었죠. 무관중으로 찍었는데, 시청자들이 오고 싶어 해서 400회는 방청객을 받기로 했어요. 200석짜리 공연장에 딱 30분만 초대하는데, 많이들 신청하셨어요. 구구절절 사연도 많더군요.(웃음)”

일요일 새벽 2시 방송에 시청률 1%도 안되는 ‘티예무’의 팬덤은 작지만 은근 강력하다. “시청률 1%가 30만명이니 0.1%면 3만명이거든요. 세종문화회관이 꽉 차도 3000명이니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작은 숫자는 아니죠. 매회 10만명쯤 보는 셈인데, 많지 않아도 일단 보는 분들은 열렬한 매니어들이에요. 실황 녹화 프로는 타 방송사에도 있지만, 오랜 시간 클래식계 인맥을 다져온 덕분에 제일 좋은 공연을 섭외할 수 있으니까요. 핫한 공연은 다 우리가 하니 ‘수예무’ 때처럼 고정 팬덤이 생긴 거죠.”

최근엔 유튜브 채널을 열어 젊은 층까지 팬덤을 확대하고 있다. 새벽 편성이 아쉬워 수요일 밤 10시 유튜브로 재방송을 스트리밍하며 팬들과 소통한다. 6월말 열었는데 금세 구독자가 3만 6000명을 넘었다. ‘열심히 티예무를 보는 사람들’끼리 자칭 ‘열무’라는 이름도 지었다. “BTS에 ‘아미’가 있다면 티예무에겐 ‘열무’가 있다”는 게 이들의 변이다.

“‘열무’ 이름 지어준 분에게 슈베르트 CD 전집을 선물했어요. 400회 특집 땐 열무를 그려 넣은 굿즈도 제작했죠.(웃음) 젊은 팬들과 얘기 나누려고 만든 채널인데, 두어 달 만에 클래식 매니어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어 뿌듯합니다.”

‘티예무’ 제작진들은 콘텐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시청률이 미미한 공연 실황 녹화를 구색 맞추기 식으로 제작하는 타 방송사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저희에겐 ‘티예무’가 그저 일이 아니거든요. 팬들은 일요 본방을 ‘혹독한 본방사수’라고 해요. 새벽 2시에 깨어있는 자만이 볼 수 있다는 거죠. 트롯, 아이돌 일색인 방송에서 좋은 시간대는 어림없으니,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해 셀프로 재방송을 기획한 겁니다. 제작진이 직접 채팅에 참여해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유하고 있고요. 해보니 너무들 좋아하세요. 좋은 공연은 공연장에서 봤어도 또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클래식 스트리밍이 많아진 환경에서도 한 PD는 ‘티예무’의 미래를 자신했다. ‘고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이다. “섬마을 소녀가 클래식에 관심이 있어도 공연을 보러 갈 수 없잖아요. 실황 스트리밍이 많아도 우리 콘텐트는 독보적인 고퀄리티라 생각해요. 콘텐트가 어설프면 대중이 클래식에서 더 멀어지겠지만, 정말 최고의 연주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와 닿거든요. 우리를 통해 좀 더 클래식을 알리고 공부도 되게 하고 싶어요. 극히 일부 팬이 아닌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즐겼으면 해서죠. 제 경험상 클래식을 알고 인생을 사는 건 큰 보너스거든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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