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능은 되는데…37만 보건의료 응시생, 격리 땐 시험 못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년째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6)씨는 최근 교사임용시험에서 자가격리자 67명이 시험을 못 봤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 시험은 어쩌나’ 걱정이 된 김씨는 세무사 자격시험위원회에 “확진자 및 격리자 응시 가능 여부”를 물었다가 “확진자는 당연히 시험을 못 본다. 자가격리자도 응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씨가 응시한 세무사 2차 시험은 12월 5일 시행된다.

세무사·공인중개사도 마찬가지 #수험생들 재응시 1년 기다려야 #간호사협 “행정 편의주의” 비판

25일 김씨는 “60만 명이 보는 수능시험도 확진자 응시가 가능하다”며 “고작 몇천 명이 응시하는 시험에 대책이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모든 수험생이 응시 불가가 자기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관끼리 책임만 떠넘기고 있어 각종 수험생 커뮤니티가 떠들썩하다”고 전했다. 자칫 코로나19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되면 길게는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세무사 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세무사·공인중개사·행정사 등 전문자격증 시험과 국가기술자격증 시험 580여 개를 주관한다. 지난달 19일 올라온 공단 공지사항에 따르면 ‘확진자 및 감염의심자(자가격리자 등)’는 공단이 관리하는 국가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올해 이 규정으로 시험을 못 본 응시생은 지난달 30일 기준 140여 명이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이 주관하는 자격(면허 포함)시험 응시생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국시원은 의사·한의사·간호사를 비롯해 치과기공사·물리치료사·영양사 등 26개 직종의 시험을 주관한다. 한 해 응시생이 37만 명가량 된다.

당장 28일로 예정된 치과기공사 필기시험이 비상이다. 응시생 1200명 중 16명이 시험을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모 대학 치기공 관련 학과 소속 학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접촉자로 분류된 응시생 5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또 타 대학 응시생 중에서도 10명의 자가격리자가 나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거론하며 “차별 조치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지난 23일 간호사협회는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 응시 불가 방침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성명서를 냈다. 간호사협회는 “훨씬 많은 인원이 응시하는 수능은 확진자에게도 별도 시험 장소를 제공한다”며 “명백히 차별되는 조치”라고 밝혔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응시 불가 조치는 추가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자가격리자 1명 응시에 따른 시험 장소 준비, 감독위원 위촉, 방역 준비 등을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시원 관계자도 “환자나 자가격리자를 구분해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다. 보완 방안을 마련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 문제가 있다”면서도 “확진자 및 자가격리자 수험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이 어려운 만큼 청년들에게 자격증 시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공정성 논란도 결국 기회가 적어졌을 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시험 담당 부처별로 확진자·자가격리자 응시 기준이 다르다”며 “정부가 국가시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정성 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확진자·자가격리자가 응시 못하는 임용·국가자격시험

교사임용시험, 세무사, 치과기공사, 감정평가사, 경매사, 공인노무사, 공인중개사, 관세사, 관세통역안내사, 물류관리사, 변리사, 사회복지사 1급, 손해평가사, 주택관리사보, 청소년상담사, 행정사, 호텔관리사

편광현 기자, 세종=김민욱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