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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라구요? 약도 돼요" 식중독균·뱀독 등

중앙일보

입력

눈가의 주름살을 펴는 특효약인 ‘보톡스’는 신이 만든 독 중 가장 센 독을 쓴다.상한 통조림 등에서 자라는 보툴리눔이라는 세균이 만드는 독이 그것으로 1g이면 1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이다.

그러나 보툴리눔 독을 치사량의 1천분의1 정도만 눈가에 주사하면 그 주위의 주름살이 펴진다.이를 사시환자에게 주사하면 사시가 교정되기도 한다.

흙이나 생활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슈도모나스 세균이 만드는 독 역시 식중독을 일으킨다.

이 독소를 암 치료제와 결합해 ‘미사일 항암제’로 사용한다.항체에 독소를 붙여 주사하면 암 세포에만 가서 붙은 뒤 그 독소가 암세포를 죽이도록 하는 원리다.정상 세포에는 항체가 붙지 않기 때문에 해가 없다.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살에만 스쳐도 죽을 정도의 맹독들이 훌륭한 의약품으로 속속 변신하고 있다. 투여량을 조절하거나 유전공학을 이용해 독을 약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급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디프테리아 세균의 독을 이용한 항암제 개발도 한창이다. 디프테리아에 걸리면 목이 막히고 고열에 시달려 심하면 죽는다. 이 독은 암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세포분열의 한 과정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의 장에 서식하는 세균인 쉬겔라가 분비하는 베로 독소도 림프종이나 뇌종양 등의 항암제를 만드는 데 응용한다.

독사의 독도 약품의 훌륭한 원료가 되고 있다. 뱀 독에는 피가 굳지 않게 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를 뽑아 혈전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연세대와 미 하버드대에서는 뱀독의 성분을 이용해 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연세대 심혈관연구소 정광회 교수가 칠점사의 독에서 분리한 삭사틸린의 경우 폐암.대장암.흑생종의 전이를 막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일어나는 복어 식중독 사망사고를 일으키는 테트로도 독소도 통증치료 및 마취제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캐나다 인터내셔널 웩스테크놀로지사는 이를 이용한 통증치료제를 개발해 임상시험 중이다.

선문대 응용생물과학부 정현호 교수는 "유전공학의 발달로 독을 다스려 약으로 만드는 기술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며 "독성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교수는 보툴리눔 독소를 이용한 주름살 제거용 약을 개발해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독소들은 자연조건과 비슷하게 만든 배양환경에서 손쉽게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세균은 성장 조건만 맞으면 하루에도 수백배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단백질 구조가 밝혀진 독의 경우 인공합성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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