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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반대” VS “혐오자 규탄”…서울대의 대자보 전쟁

중앙일보

입력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찢겨있다. 김지아 기자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을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찢겨있다. 김지아 기자

서울대에서 인권헌장 제정, 특히 성 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두고 ‘대자보 전쟁’이 한창이다. 20일 캠퍼스 곳곳에 붙어있는 대자보들은 일부가 찢겨 나갔고 몇몇 대자보는 내용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다른 대자보의 내용을 문제 삼는 반박 대자보도 연달아 붙고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혐오를 자행하는 그대여. 더는 인권과 학문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라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 옆엔 “과연 누가 진정한 혐오세력인가”라며 반박하는 대자보가 자리하는 식이다. 또 다른 대자보엔 ‘제발 너희끼리 놀아라. 밖으로 나오지 말고 더럽다’라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인권헌장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논란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찢겨있다. 김지아 기자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찢겨있다. 김지아 기자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교내 ‘인권헌장’ 제정 때문이다. 인권헌장은 학내 차별 및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규범으로, 서울대 인권센터가 초안을 작성해 공개한 상태다. 하지만 인권헌장의 성 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두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인권헌장 제3조는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사회·경제적 배경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혐오세력, 시대착오적” vs“자연질서에 어긋나”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 반대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 김지아 기자

서울대 인권헌장 제정 반대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 김지아 기자

인권헌장 학생추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헌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추진위는 “지난 몇 년간 교수의 권력형 성폭력과 갑질,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을 마주했다”며 “드디어 토론회, 설문조사 등을 거쳐 인권 규범이 탄생했다”며 인권헌장의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헌장이 매우 상식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일부 혐오세력은 시대착오적이고 저열한 반대를 이어오고 있다”며 “저들은 표현의 자유를 천박하게 오용해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0월엔 서울대 교수 153명이 인권헌장 제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한 인권을 위한 서울대인 연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진서연 관계자는 “대학이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주입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 12일 ‘인권헌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포럼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최대권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동성애는 헌법과 자연 질서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2016년부터 제정 논의시작”

사실 이 같은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대는 지난 2016년부터 인권헌장 제정을 논의했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 충돌로 제정이 미뤄져왔다. 서울대 관계자는 “인권헌장 제정의 구체적인 날짜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학내 의견수렴을 거친 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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