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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아 엄마 데리러 와"…3명 살린 뇌사 아들의 마지막 이틀 [영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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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아 엄마 데리러 와. 빨리 데리러 와. 응? 보고 싶어. 너도 엄마 보고 싶을 거 아니야…."

지난 11일, 부산대병원 외상중환자실. 마스크와 보호복 차림의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읍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기도를 해봅니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오라며 울음 섞인 말을 건넵니다.

호텔 현수막 설치하다 추락 손현승씨 #12일 심장·신장 기증 후 하늘의 별로 #장기기증 전 마지막 이틀, 영상에 담아 #폐 이식 맡던 의사 형, 기증자 가족 돼 #"미안하다, 다음 생엔 널 위한 삶을..." #평소 착했던 동생 "살아있다고 느껴"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묵묵부답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연신 아들을 쓰다듬어 봅니다. 다리가 혹여 굳을까 접었다 폈다를 반복합니다.

뇌사 상태로 병상에 누운 손현승씨 곁에 선 형 손봉수씨(오른쪽)와 어머니.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뇌사 상태로 병상에 누운 손현승씨 곁에 선 형 손봉수씨(오른쪽)와 어머니. [사진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병상에 누운 이는 39살 손현승씨.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현수막 업체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한 호텔에서 현수막을 설치하다 6m 높이의 리프트에서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손씨의 머리는 손쓰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근무하는 형 손봉수(41)씨는 비보를 접하고 한달음에 왔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미소를 다시 볼 순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기적을 바랐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손씨는 그때를 돌아보며 울먹입니다.

"장기 기능이나 혈압만 잘 유지하면 시간을 어떻게든 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니 폐렴이 오고 간과 콩팥 상태도 점점 악화했어요. 뇌파 검사해서 뇌파가 없으면 마음을 정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몇 년 후 기적처럼 의식 돌아온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니 저도 아닌 걸 알면서도 너무 일찍 포기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손봉수씨는 평소 폐 이식을 맡아온 의사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장기 기증자 가족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고심을 거듭한 그는 부모님께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더 악화되기 전에 이 세상에 동생의 일부분이 좀 더 살아갈 수 있는 게 의미 있을 것"이라며 설득했습니다. 결국 가족들도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형은 부모님을 대신해 뇌사 판정을 기다리고, 수술 전 필요한 사망진단서도 직접 확인했습니다.

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손현승씨의 예전 모습. [사진 손봉수씨]

3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손현승씨의 예전 모습. [사진 손봉수씨]

뇌사 조사부터 사망진단서 작성까지…. 길었던 이틀이 흐르고 장기 기증이 예정된 12일, 손현승씨는 가족들의 배웅 속에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손씨를 잡은 가족·친지들의 손은 쉽게 놓질 못 합니다.

오후 3시 30분, 수술장에 들어선 그는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3명에게 심장과 좌·우 신장이라는 새로운 삶을 선물했습니다. 적출된 장기들은 앰뷸런스를 통해 곧바로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손현승씨는 14일 장례를 마친 뒤, 형이 직접 찾아서 마련한 양지바른 가족묘에 가장 먼저 묻혔습니다. 그의 곁엔 가족들의 추모글이 담긴 비석이 세워집니다.

영원한 이별을 하기 직전, 형은 꼭 하고 싶었던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동생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병원에서 당직서랴, 이식한다고 돌아다니랴, 가족은 뒷전인 형 대신 네가 부모님이나 조카들을 따뜻하게 돌봐줘서 너무나 고마웠다. 나중에 만난다면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고, 다음에는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삶을 살게."

뇌사 장기 기증을 하고 하늘의 별이 된 손현승씨(왼쪽)와 형 손봉수씨의 예전 모습. [사진 손봉수씨]

뇌사 장기 기증을 하고 하늘의 별이 된 손현승씨(왼쪽)와 형 손봉수씨의 예전 모습. [사진 손봉수씨]

형 가족과 버스 한 정류장 거리에 살면서 자주 오갔던 손씨는 두 초등생 조카를 아들처럼 아꼈습니다. 목욕도 하고, 업어주고, 영화도 보여주는 그는 또 다른 아빠였습니다. 부모님을 직접 모시면서 듬직한 아들이자 딸 역할도 했습니다. 구세군 모금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 할 만큼 따뜻한 마음도 갖췄습니다. 그의 평소 인성이 모여 장기기증이란 숭고한 선택이 된 겁니다. 18일 중앙일보와 통화한 형 손씨도 기증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생과 장기기증 관련해 특별히 이야기 나눠보진 못 했어요. 하지만 평소 성격을 보면 가족들이 결정한 부분에 대해 하늘나라에서도 잘했다고 해줄 거 같아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손현승씨처럼 삶의 마지막을 다른 이들에게 이어준 사람은 지난해만 450명. 뇌사 장기기증이 예전보단 늘었다고 하지만 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 4만252명(지난해 기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은 편입니다. 기증자 유가족에 대한 '날 선' 공격, 뇌사 기증 자체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뇌사 장기 기증자 통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뇌사 장기 기증자 통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자신의 '업무'였던 장기 이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 형 손봉수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의료진 입장에선 이식을 위해 적출한 장기의 기능을 빨리 유지해야 하니 분, 초를 다툽니다. 기증자에 대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 가족들의 마음까지는 솔직히 헤아리거나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가족 입장에서 기증하는 과정을 겪고 나니 기증자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안타까운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제 동생 일부분이 살아있고 다른 분들이 동생의 장기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까 동생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영상=오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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