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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 해봐" 박범계 콧대 높아진 이유···'예산전쟁'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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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법원행정처 예산을 놓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라고 절실하게 해보라"고 말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정작 법원행정처는 해당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뉴스1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법원행정처 예산을 놓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라고 절실하게 해보라"고 말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정작 법원행정처는 해당 예산 배정을 거부했다. 뉴스1

“(삭감 예산을) 살려야 하지 않겠나.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 절실하게 한 번 해보세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한 발언이다. 국내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DB) ‘법고을LX’의 이동저장장치(USB) 제작 보완비용(3000만원)이 0원으로 삭감된 것에 대해서다. 박 의원의 “살려주십시오 해보라”는 발언은 “국민 혈세가 자기들 쌈짓돈인가”(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며 난타당했다.

박 의원이 ‘살려주십시오’ 운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산철 국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국회는 한창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는데, 정부 예산을 ‘칼질(삭감)’할 수 있는 예산심사권을 가진 국회의원 앞에서 관계자들은 위축되기 일쑤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살려라’는 증액이나 유지를, ‘죽여라’는 삭감을 뜻하는데 마치 생사를 쥐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①읍소형

문화체육관광부 실장(차관보)급 인사는 지난달 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초선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찾았다.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 4건에 대한 446억원 증액 요구안이 담긴 자료를 해당 의원실 보좌진에 건넨 이 인사는 의원을 만나서는 “기획재정부가 본예산을 추릴 때 우리 요구안이 크게 깎였다. 의원님이 좀 살려달라”며 읍소했다. 해당 보좌진은 “처음 겪는 일에 의원도 놀란 눈치였다”고 전했는데, 문체위 예비심사보고서엔 ‘증액 검토’ 의견이 달렸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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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결산특별위원인 민주당 의원 방엔 무시로 전화벨이 울린다고 한다. “허락만 해주시면 당장 뵙고 싶다. 찾아가도 되겠느냐”는 각 부처 산하기관들의 전화다. 국민의힘이 내년도 정부예산안 관련 100대 문제사업을 지정하면서 K뉴딜 관련 17개 사업(5조813억원) 중 2조4596억원의 삭감을 요구하자 대상이 된 부처가 여당에 보호막을 요청한 거다.

②포럼형

여권의 유력한 차기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고 만나고 있다. ‘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를 2일부터 잇따라 열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과 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였다. 경기도 추진사업 117개, 국비 8조1994억원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었는데 이 지사는 “국민의힘 정책이나 경기도 정책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기도가 추진 중인 기본주택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한 참석자는 “이 지사가 하나하나 설명하자 국민의힘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여가며 경청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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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한 기초단체는 최근 문체위 소속 국회의원과 시의원 등 4명을 서울 여의도 한 사무실로 초청해 ‘지역 수영장 건립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시장과 실·국장급 10여명이 총출동해 지역 체육시설 현황과 건립이 필요한 이유를 꼼꼼히 설명했다. 이를 본 한 보좌관은 “스마트폰 시연회 같았다”고 말했다.

③캠프형

광역지자체가 의원회관에 둥지를 튼 경우도 있다. 공무원들이 해당 지역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사무실에 컴퓨터와 프린터 등 사무기기를 놓고 수시로 드나들며 예산소위에 속한 의원실을 챙긴다. 사무공간을 내준 의원실은 지역구 예산 배정 때 유리하다. 영남 지역 의원의 한 보좌관은 “예산을 따냈다고 현수막을 걸고 홍보하는 경우 중 다수는 지자체와 의원실이 함께 움직인 결과”라고 말했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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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지난 9일부터 국회 사무처는 공무원에 한해 출입요건을 완화했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개별 의원실의 허가가 없으면 외부인의 출입이 어려워지는 등 출입요건이 강화됐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예산 로비를 위한 공무원들의 의원회관 출입이 더 빈번해졌다”고 말했다.

④실세형

실세 장관이나 실세 단체장이 있는 경우엔 예산을 따내는 게 비교적 쉽다. 친문(親文) 핵심 김경수 경남지사의 역점사업인 ‘부전·마산 전동열차 신규도입’(255억원) 사업의 경우 국토위 예산심사보고서에선 국토위 소속 민주당 의원 18명 중 9명의 ‘증액 검토’ 서면질의가 담겼다. 여권 관계자는 “서면질의가 들어가면 해당 예산을 증액할 가능성이 커진다.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에 ‘과연 김경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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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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